"자 없었으면 우린 다 죽었다"…산불 속 할머니 업고 뛴 외국인 영웅

입력 2025-04-01 11:51:43 수정 2025-04-01 14:03:10

31일 경북 영덕군 지품면사무소(가운데 건물) 주변에 탄 흔적이 남아 있다. 의성에서 시작된 경북산불은 지난 25일 영덕까지 번졌다. 연합뉴스
31일 경북 영덕군 지품면사무소(가운데 건물) 주변에 탄 흔적이 남아 있다. 의성에서 시작된 경북산불은 지난 25일 영덕까지 번졌다. 연합뉴스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거대한 산불이 곳곳으로 번져 큰 피해를 입힌 가운데 영덕군의 한 마을에서 외국인 선원이 수십명의 주민을 구한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달 31일 뉴스1에 따르면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은 지난 25일 밤 11시 강풍을 타고 영덕군 축산면 등 해안마을을 덮쳤다.

밤 11시쯤 산불이 급속히 확산하자 마을어촌계장 유명신씨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외국인 선원 수기안토씨(31)와 함께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집집마다 뛰어다녔다.

이들은 몸이 불편한 마을 주민들을 먼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수기안토씨는 "할머니 산에 불이 났어요. 빨리 대피해야 해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잠을 깨우러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해안 비탈길에 집들이 밀집해 노인들이 빨리 움직이기엔 어려웠다. 이에 두 사람은 노인들을 업고 300m 거리에 있는 방파제까지 옮겼다고 한다.

수기안토는 "사장님(어촌계장)하고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제가 말한) '빨리 빨리'라는 소리에 잠에서 깬 할머니들을 업고 언덕길을 내려왔는데 바로 앞 가게까지 불이 붙어 겁이 났다"고 말했다.

그의 등에 업혀 대피한 90대 주민은 "테레비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밖에서 불이 났다는 고함에 일어나 문밖을 보니 수기안토가 와있었다. 등에 업혀 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며 "자가(저 애가) 없었으면 우린 다 죽었을 거다"라고 말했다.

8년 전에 입국한 수키안토는 인도네시아에 부인과 5살 아들이 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이 너무 좋다. 특히 마을 사람들이 가족 같다"며 "3년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향에 있는 부인으로부터 자랑스럽다는 전화를 받았다. 산불로 다친 사람이 없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수기안토와 어촌계장이 없었으면 아마도 큰 일을 당했을 거다. 저렇게 훌륭하고 믿음직한 청년과 함께 일하고 계속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칭찬했다.

경정3리에는 약 80가구에 6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수기안토씨 등의 도움으로 주민들은 모두 방파제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