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일만 일찍 오지"…비소식에도 착잡한 청송 이재민

입력 2025-03-28 18:33:39 수정 2025-03-29 16:35:12

산불 잦아들면서 대피소서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도

28일 청송 대피소 모습. 이날 비소식에 더해 산불 주불이 잡혔지만 이미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상구 기자
28일 청송 대피소 모습. 이날 비소식에 더해 산불 주불이 잡혔지만 이미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상구 기자

28일 경북 북부 지역 산불이 발화 149시간 만에 진화됐다. 한발짝 늦은 이날 비소식에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산림청 중앙사고수습본부 등에 따르면 28일 오후 5시 경북 의성과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5개 시군의 산불이 모두 꺼졌다. 전날 늦은 밤부터 1~3mm의 비가 내린 데다 거셌던 바람이 잦아든 영향이 컸다.

28일 오후 3시 청송 진보문화체육센터에 꾸려진 대피소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이날 오후 한 때 한차례 비가 더 내리면서 일부 주민들은 대피소 밖으로 나와 손바닥을 펴고 비를 맞았다.

주민 박춘화(81) 씨는 "그동안 아무것도 없는 대피소 텐트에서 눈만 감으면 불이 막 번지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큰 피해 없이 불이 거의 잡혔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라며 "불이 나 급하게 대피하면서 매일 먹어야 하는 혈압약도 못 챙겨 나왔는데 이제야 병원에 가서 약이라도 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산불 위협이 사라지면서 삶터로 돌아가는 주민도 늘고 있다. 전날까지 200명에 육박했던 진보문화체육센터 대피소 인원은 이날 188명으로 줄었다. 텐트가 모자라 천장이 없는, 사실상 가림막에 가까운 시설까지 끌어 쓰던 이곳 상황도 여유 텐트가 6개 생길 정도로 상황이 나아졌다.

청송군청 관계자는 "아직도 대피소로 들어오는 인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다"며 "산불 초기 구호물품이 모자랐던 시기도 있었지만 재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원이 잇따라 지금은 오히려 남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28일 오후 4시 비가 내린 청송군 진보면의 한 사과밭 모습. 박상구 기자
28일 오후 4시 비가 내린 청송군 진보면의 한 사과밭 모습. 박상구 기자

그럼에도 마냥 웃지 못하는 주민들이 적잖았다. 대피소에는 이날 오전 불에 탄 집에 다녀온 주민들이 처참한 현장 모습을 미처 가보지 못한 주민들에게 알려주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그럴 줄 알았다며 한숨을 쉬는 주민이 있는가 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진보면 주민 이모(71) 씨는 "이미 집이랑 밭이 다 탔는데 이제 와서 비가 오면 뭐하냐"며 "2, 3일만 비가 일찍 왔으면 이렇게 집 없이 대피소로 올 일도 없었다. 살 집도 없는데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도 없고 막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