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산골 도로 끝 '도촌리 생가터', 관심은 많지만 기반은 미비
깨·콩 자라는 밭 한가운데, 임시 표지판에만 의존
"지역 아닌 국가의 상징 공간…정부 차원 정비 시급"

경북 안동 출신 이재명 대통령 취임 한 달을 앞둔 지난달 28일 대통령의 생가가 위치한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 마을.
안동 도심에서 1시간 넘게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깊은 산골이지만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오지 마을이 됐다. 매일 수백 명의 방문객으로 북적인다.
◆현수막과 손 글씨가 안내하는 생가터
예안면을 지나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될 무렵, '제21대 대통령 이재명 생가터 5㎞'라는 녹색 도로표지판이 등장한다. 그 뒤로는 별다른 이정표가 없다. 내비게이션도 정확히 인도하지 못해 방문객들은 마을 입구를 헤매기 일쑤다.
그나마 마을 주민들이 설치한 임시 현수막과 손 글씨 안내문이 길잡이 역할을 한다. 녹슨 드럼통에 붙여진 종이에는 '생가터'라는 글씨가 흔들리고 있었고, 밭 한편에는 '제21대 대통령 이재명 생가터'라는 팻말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생가터는 별도의 구획이나 건물 없이 깨와 콩이 자라는 작은 밭이다. 경계를 나타내는 표시도 없고, 쉼터나 안내소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마을에 들어서면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고, 주민 봉사자들이 폭염 속에서도 밀짚모자 하나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하루 400명 찾지만 주차장도, 화장실도 없어"
현장에 있던 봉사자는 "주말에는 평균 300~400명 이상이 방문한다. 단체 관광버스도 들어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파를 감당할 수 있는 인프라는 전무하다.
기존에 있던 협소한 마을 주차장은 많은 방문객을 감당하기에는 포화 상태고, 대형 관광버스가 올 때는 차량을 돌려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좁은 도로에 차량이 줄지어 세워지고, 그로 인해 통행이 어렵고 사고 위험도 높다. 더 큰 문제는 화장실이다. 한때 설치됐던 간이 화장실은 철거돼 현재는 500m 이상 떨어진 마을 외곽까지 차량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대전에서 가족과 함께 찾은 50대 방문객은 "현직 대통령 생가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이런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정부든 지자체든 최소한의 예우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주민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방문객은 계속 늘어나는데, 아무런 시설도 없고 마을 주민들만 봉사에 매달리고 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안동시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30대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 조성 공사를 시작했다. 대형 버스 회차가 가능한 규모로 조성하고 있다.
주차장 한편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화장실도 설치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안동시는 지난달 300만원을 들여 생가터 마을을 안내하는 도로 안내판 2개를 설치하기도 했다.

◆ "이곳은 단지 출신지가 아닌 국가의 상징… 품격 필요해"
안동문화지킴이 김호태 이사장은 도촌리 생가터에 대해 "이곳은 더는 안동만의 상징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희망이 깃든 상징적 장소"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강남도, 명문고도 아닌 깊은 산골에서 용이 난 이재명 대통령의 생가터는 수많은 이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며 "그렇기에 여야를 떠나 국비를 포함한 정부 차원의 정비와 예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처럼 종이 표지판, 임시 안내, 주민 자원봉사에 의존하는 생가터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상징 공간으로서의 품격을 갖춰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날 현장을 찾은 방문객들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대통령 생가터라면 누구나 자부심을 갖고 찾을 수 있는 품격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호태 이사장은 "이제는 지역 정서를 떠나 국민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할 공간"이라며 "대통령의 생가터는 단지 출신지가 아니라 미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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