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가는 주민들...길어지는 대피소 생활, 산불은 장기화

입력 2025-03-27 19:10:13 수정 2025-03-27 19:16:46

"잠도 안 와, 약도 없어"…불안과 불편에 시달리는 고령 이재민들

의성실내체육관에서 만난 문재훈(73) 씨가 불에 탄 집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윤영민 기자
의성실내체육관에서 만난 문재훈(73) 씨가 불에 탄 집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윤영민 기자

"대피소에서 잘 챙겨줘도 집 보다 먹고 자는 게 편할 수 있겠냐"

27일 오전 의성실내체육관에서 만난 문재훈(73) 씨는 6일째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 대피소에서 가장 오래 지낸 주민이다. 지난 22일 의성산불이 발생한 첫째날, 살고 있는 의성읍 중리 3리 마을에 덮친 화마로 집을 잃었기 때문이다.

문씨는 "대피 당시 입고 나온 옷 한 벌이 전부"라며 "앞으로 살 길이 걱정돼 잠도 안 오고 답답해서 매일 대피소 문 앞에서 먼산만 보고 있다"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엿새째 경북 동북부를 휩쓸고 있는 괴물 산불의 기세가 여전히 꺾기지 않고 있다. 불길을 피해 집을 떠나온 주민들의 대피소 생활도 길어질 전망이어서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이날 경북도 등에 따르면 경북 의성에서 동북부로 확산된 산불 6일째인 27일 오후 6시 기준 각 시군에 마련된 160여 개의 대피소로 3만3천89명이 불길을 피해 대피했다. 이 중 1만7천720명은 귀가했으나 1만5천369명은 아직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다.

각 시군에서 최대한 구호물자 등 끓어모으고는 있지만 대피소 상황은 저마다 다르다. 좁은 대피소는 구호용 텐트도 설치할 수 없어, 작은 개인용 텐트를 치고 생활하고 있다. 이마저도 설치를 못하는 경우는 차가운 바닥에 겨우 매트와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하고 있다.

안동에 한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김재욱(66) 씨는 "대피소에서 먹는 것, 입는 것은 지급을 받았지만, 여기 대피소는 기사에서 봤던 대피소 내 텐트가 없어 다 노출된 채로 생활을 한다"며 "서로 배려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지만 생리적 현상 같은 것 때문에 민망할 때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의료지원도 절실하다. 경북의 지역소멸 우려지역에 발생한 이번 산불로 인해 대피소에는 건강에 취약한 고령자들이 대부분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로 인한 인후통, 흉통 등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불편한 바깥 생활로 감기, 몸살 등에 걸린 노인들도 겨우 비상약으로 버티고 있다.

의성고등학교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최모(85) 할머니는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하니까 약국에 파는 약만 누가 받아서 줬다"며 "병원에 가고 싶어도 데리고 갈 마을 청년들도 자기들 챙기기 바쁘고 다들 바쁜데 뭐를 부탁하기도 미안스럽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이철우 경북지사는 27일 긴급 간부회의를 통해 이주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숙박시설을 확보할 것을 간부들에게 지시했다.

이 지사는 "현장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직접 살펴서 지원하고 편안한 호텔급 숙박시설로 최대한 안내하는 등 선진국형으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라"고 주문했다.

27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영덕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산불 이재민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앉아 있다. 연합뉴스
27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영덕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산불 이재민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앉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