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에도 초등교육 수준에 머무르면서 기초부진으로 분류
학업 부진에도 부모는 무관심으로 방치, 교육 지원도 거절
"다문화 중고생들, 중간·기말 시험 한 번호로 줄 세워"
지난 2월 11일 오후 2시쯤 찾은 대구 달성군 논공읍 산자락 인근 20년이 다 된 가정집. 패널로 만들어진 이 집에서 10년 넘게 사는 성민(14‧가명)이가 타일이 깨진 계단을 오르며 문을 열었다.
25평(83㎡) 남짓한 내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소주병들이 빼곡하게 담긴 쓰레기봉투들이었다. 성민이는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가 다 마신 것들이에요."
방으로 들어간 성민이는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을 꺼냈다. 그런데 어디선가 담배를 피운 듯한 냄새가 난다. 옆방으로 눈을 돌리자 아버지의 전용 재떨이에 담배꽁초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30개비가 넘는 담배꽁초는 아버지가 떠난 지 6시간이 지나도 냄새가 자욱한 이유를 대변해줬다.
책상이 없는 방에서 덩그러니 놓인 침대 하나가 책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하지만 생소하고 낯선 어휘들이 많아 읽히지 않는다. 성민이는 "교과서에 있는 글들은 더욱 안 읽힌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난해 중1이 되면서 차이를 크게 느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국적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성민이는 다문화 가정의 학생이다. 올해 중학교 2학년으로 학업에 더욱 전념해야 할 때지만 녹록지 않은 환경이 그를 가로막고 있다. 부모의 무관심과 언어 장벽 속에서 한국 친구들처럼 교과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힘에 부친다.
성민이는 초등 수학에서 진작에 뗐을 사칙연산에서 헤매고 있다. 곱셈과 나눗셈을 만나면 골똘히 들여보다가 이내 곧 머리가 지끈거린다. 수학 풀이의 기본인 셈법에만 많은 시간이 걸리면서 지난해 기초부진 학생으로 분류됐다.
성민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배운 덧셈과 뺄셈도 숫자가 많아지면 어렵다"며 "기초 수업을 듣고 재시험만 3번을 치면서 겨우 통과했다"고 말했다.
문해력 부족은 국어와 수학뿐만 아니라 영어도 발목을 잡았다. 성민이의 영어는 겨우 알파벳을 외운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교과서에 적힌 한국어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다른 나라의 언어를 익히는 것은 더욱 벅차다.
부모님은 학업 부진에 빠진 아들에게 관심을 쏟지 않았다. 이혼한 어머니는 경남 창녕 자동차 공장으로 갔다. 여름과 겨울 방학 때 한 번씩 보는 것을 제외하면 안부 메시지를 남기는 게 전부다.
오전 8시에 집을 나선 아버지는 오후 10시가 가까워져서야 돌아왔다.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술잔을 기울이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성민이는 그런 아버지와 마주 앉아 학업이나 진로를 논의해 본 적이 없다.
최근에는 아들의 학습 지원마저 거절했다. 교육복지사가 돌봄을 받지 못하는 성민이에게 1대1로 학습을 돕는 대학멘토링을 연결하려 했지만, 아버지로부터 동의를 받지 못한 것이다.
성민이를 담당하는 최보영(가명) 교육복지사는 "다문화 학생들이 교육 당국과 부모로부터 소외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최 복지사는 "중‧고교에는 외국에서 들어온 학생들이 많다. 이들이 수업을 따라가는 건 꿈 같은 이야기"라며 "중간‧기말 고사 때 한 번호로 줄 세우고 잠을 자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매일신문은 지난 한 달간 성민이를 포함해 다문화 중‧고생 12명과 심층 인터뷰 진행했다. 이들은 복수 응답(1~3순위)을 통해 ▷교육(입시) 정보 취득 어려움(83%) ▷한국어 구사 어려움(58%) ▷교과 과정 지원 부족(58%) ▷경제적 빈곤(50%) ▷부모 무관심(41%)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학교 안팎의 다문화 실태와 문제, 해법을 담은 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 현장 관계들과 전문가들이 털어놓는 교육 환경의 현주소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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