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조두진] 부정선거 의혹과 대통령 탄핵

입력 2025-02-24 19:22:14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국민들은 깜짝 놀랐다. 1970년대, 1980년대를 연상(聯想)하며 공포감을 느꼈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금방 느긋해졌고 내심 희희낙락(喜喜樂樂)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상계엄=내란' 프레임으로 윤 대통령 탄핵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들이 요즘 화를 낸다. 평소 격한 언사(言辭)를 쓰지 않던 사람들도 자주 격한 말을 쏟아낸다.

주말마다 열리는 탄핵 반대 집회에 쏟아지는 인파들, 대학생들이 나서서 '부정선거 의혹 검증' '탄핵 반대'를 외치는 상황,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50% 안팎을 기록하는 현상도 화를 내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고 본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한쪽은 '내란'이라고 주장하고, 한쪽은 '국민계몽령'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당 지지층이 화를 내는 것은 자신들이 '내란'이라고 믿는 비상계엄령이 많은 20·30대 사이에서 '국민계몽령'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 자신들이 '정의(正義)'라고 확신해 온 것들이 '불의(不義)'일지 모른다는 회의, 명분(정의)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었는데, 그 명분이 실은 상대 진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혼란과 초조함 때문이라고 본다.

2020년 총선 직후부터 부정선거 의혹이 확산되어 왔다. 사전 투표 조작, 선관위 서버 해킹, 개표기 문제, 형상기억종이 등 의혹은 다양하다. 부정선거는 없었다는 사람들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쪽을 음모론자, 확증편향적 사고에 젖은 사람으로 몰아세운다. 1950년대, 1960년대도 아니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 중에는 터무니없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반드시 검증이 필요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내용도 많다. 선관위가 반박 해명을 내놓았지만, 의문은 여전히 해소(解消)되지 않았다.

국민 절반 가까이가 선거 투개표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모두 까서 의혹을 털어내야지 음모론으로 매도(罵倒)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부정선거 의혹을 검증하자"는 쪽과 "부정선거는 없었다. 입 다물라"는 쪽 중 어느 쪽이 합리적인가?

2020년 총선 이후 부정선거 의혹이 광범위하게 퍼졌지만 선거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全面的) 검증은 한 번도 없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한 이유로 '부정선거 의혹 검증'을 들었고, 탄핵 심판 중에도 두 번이나 선관위 서버 검증을 요구했지만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할 때, 과거에 실패한 방식을 답습(踏襲)해도 실패하지만, 위험 징후가 있음에도 과거에 성공했던 방식을 고집해도 실패한다. 대명천지(大明天地) 21세기라고 해서 부정선거는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대통령은 비상계엄 말고도 부정선거 의혹을 검증할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는 말은 작금(昨今)의 현실과 거리가 멀다. 하물며 대통령이 직(職)을 걸고, 계엄을 선포하면서까지 선관위 서버 검증을 요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어떤 부정선거가 발생해도 바로잡을 수 없다.

비상계엄의 절차적 위헌을 따져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면서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드는 '선거 불신'을 해소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난 여부는 확인하지 않고, 도둑을 신고한 사람만 허위 신고로 처벌하겠다는 격이다. 부정선거 여부(與否)를 명확히 한 다음 대통령 탄핵을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