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남진] 한국판 '아자부다이 힐스'의 성공을 위한 제언

입력 2025-02-09 15:19:11 수정 2025-02-09 15:57:48

서남진 도시및지역계획학 박사, 전 LH대구경북지역본부장
서남진 도시및지역계획학 박사, 전 LH대구경북지역본부장

얼마 전 일본에 다녀올 기회가 생겨 도쿄 시내에 있는 아자부다이 힐스를 둘러본 적이 있다. 64층, 8만㎡ 블록에 랜드마크로 우뚝 선 건물의 절반 이상은 오픈 공간이다. 주거‧업무‧상업‧문화 시설과 학교, 병원까지 갖춘 곳임에도 지상뿐 아니라 저층 건물 상부까지 기존 지형을 살리면서 다양한 나무와 꽃, 물길을 갖춘 녹지공원이 조성됐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아자부다이 힐스 벤치마킹 열풍이 불고 있다. 관련분야 학계와 공무원들의 필수탐방 코스가 되었다. 서울과 지방 도심의 거점지역을 중심으로 저마다 화려한 한국형 아자부다이 힐스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한국형 아자부다이 힐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건설 산업과 관련된 몇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대형 시행사(디벨로퍼)의 육성이 필요하다. 자체 자금보다는 금융을 동원하고 빌딩 몇 개 지어 팔고 떠나버리는 시행사가 아니라 일본의 모리빌딩 회사처럼 커다란 블록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부지매입, 설계, 인허가, 시공, 자산운용까지 오랜 기간 책임과 일관성을 가지고 리드해나갈 수 있는 정도의 풍부한 자금력과 전문성, 조직을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

건설공법과 현장인력 관리도 중요한 문제다. 콘크리트 타설 위주의 건설방식은 시간과 인력이 많이 소요되고 품질 관리가 까다롭다. 현장 인력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 근로자와의 의사소통 문제가 불거진 지도 오래다. 이로 인해 품질 저하는 물론 안전사고까지 우려된다. 날씨와 환경, 건설인력 등 현장 여건을 극복하면서 정밀시공이 가능한 모듈러 공법이나 조립식 공법으로 대체해야 한다. 일본처럼 건설업을 첨단 제조업으로 인식을 전환시켜야 한다.

선분양제도도 손을 볼 때가 왔다. 물건도 보기 전에 미리 대금을 지급한 경우 시공사에는 대충 건설하고 하자 처리하면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수분양자에게는 품질에 문제가 있어도 해약할 수 없는 족쇄가 된다. 해외에서는 대부분 후분양제를 채택하고 있다. 선분양하더라도 계약금 정도에 불과하며 준공 후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해약할 수 있다. 시공사는 당연히 품질관리에 만전을 기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의 맨션이 광고용 조감도와 실제 준공된 건물이 별반 차이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업비 회수를 위해 건축물은 분양할 것인가 아니면 임대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시행사 입장에서는 분양할 경우 자금회수가 빠르고 리스크 이전이 가능해 유리하다. 하지만 각 소유자마다 무분별한 자체 관리로 인해 시행사가 설정한 개발 초기의 컨셉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어렵다. 롯폰기 힐스가 완공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개발 당시의 외형을 유지하는 것도 모리빌딩회사가 보유 자산을 분양이나 매각보다는 임대 위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자금력이 충분히 뒷받침되기에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렵고 힘든 과제가 소위 '사회적 자본'이다. 롯폰기 힐스나 아자부다이 힐스의 경우 개발구상부터 완공까지 40년 가까이 소요됐다. 수백명의 소유자를 만나 설득하고 부지를 매입하는 데만 십 년 이상 걸렸다고 한다. 사업 기간 중에 도시정책을 결정하는 행정 권력의 변화도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장기(long-term) 프로젝트는 정치‧경제‧사회 모든 측면에서 뜻밖의 암초를 만나게 된다. 따라서 디벨로퍼, 지역주민, 행정기관, 정치권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공동체와 미래세대를 위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양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