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송의달] 트럼프의 거친 행보에 어떻게 대응할까?

입력 2025-02-13 12:48:31 수정 2025-02-13 17:00:47

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지난달 20일 미국 백악관에 재입성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세계를 혼란과 혼동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달 5일까지 16일 동안 그가 서명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숫자(54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80년 만에 가장 많다.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전임자인 조 바이든(42개), 버락 오바마(19개), 조지 W 부시(11개), 빌 클린턴(13개) 등이 한 행정명령 숫자를 압도한다.

대통령 포고(proclamation)와 각서(memorandum), 행정명령 등을 포함해 트럼프가 올 들어 내린 대통령 행정조치(Presidential Actions)는 200개가 넘는다. 이 칼럼 안에 그가 발표한 행정조치 목록을 다 적지 못할 정도다. 취임 전날 지지자들과의 만찬에서 공언한 대로 트럼프는 "번개 같은 속도로, 한순간도 쉬지 않고"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

더욱이 그가 내놓은 조치들은 하나같이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일색이다. 일례로 트럼프는 1961년 창설 후 세계 각국에 인도적 지원과 원조를 제공해 온, 연간 62조원 예산을 운용하는 미국 국제개발처(US AID)를 1만 명 직원 중 290명만 남기고 없애고 있다. 중앙정보국(CIA)의 모든 직원들에게는 8개월 급여와 복리후생 제공을 조건으로 조기 퇴직을 제안했다.

교육부 해체와 200만 명의 연방 공무원 중 3분의 1을 줄이고 7조달러의 연간 연방정부 예산에서 1조달러를 절감한다는 계획도 정부효율부(DOGE)를 통해 밀어붙이고 있다. 트럼프의 일방통행을 막기 위해 10여 개 소송이 제기됐고 반(反)트럼프 시위와 트럼프에 대한 탄핵안까지 나오면서 지금 미국은 혁명 상황을 방불케 한다.

국제사회의 불안감은 더하다. 자유무역협정(USMCA)을 체결한 캐나다, 멕시코와 파나마, 그린란드에 대해 트럼프는 "51번째 주(州)가 되라" "25%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점령하겠다"는 폭탄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의 언행은 세계화된 21세기 대명천지에 어울리지 않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제국주의 시대를 연상케 한다.

거칠고 입담 험한 시진핑도, 푸틴조차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다. 세계 3위 경제 대국 일본을 이끄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이달 7일 백악관에서 평소 소신을 깨고 트럼프에 '아부'하며 1조달러(약 1천460조원) 대미(對美) 투자를 약속했다. 일부 나라에서 "트럼프에 맞서 단결하자"는 분위기가 감지되지만, 이들은 '찻잔 속 바람'에 그칠 뿐이다.

취임 3주일 남짓한 트럼프의 '공포 정치'에 세계가 납작 엎드리고 있는 형국이다. 로버트 주니어 케네디 보건복지부 장관, 캐시 파텔 FBI(중앙정보국) 국장, 털시 개버드 DNI(국가정보국) 국장 등이 의회 인준을 통과해 업무를 시작하면, 트럼프발(發) 질풍노도는 더 강력하고 더 거칠어질 전망이다.

트럼프의 행보는 '미국의 황금시대(Golden age of America)'라는 국정 목표에 빈틈없이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워싱턴 기득권 세력 중심의 국내 구(舊)체제 뒤집기와 70년 넘은 '선의(善意)의 국제주의'를 버리고 새로운 세계 정치·군사 및 경제·통상 질서 수립을 시작했다. 과거엔 제2차 세계대전 막판에 최대 전승국(戰勝國) 미국 주도로 이뤄졌던 새판 짜기가 이번에는 평시에 트럼프의 말로 이뤄지니 세계 도처에 평지풍파가 일어난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한국으로선 미국의 이런 표변(豹變)이 야속하지만 불평하거나 거부할 처지가 못 된다. 한국보다 15배 국력이 큰 미국과 싸웠을 때 피해를 입는 것은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속국(屬國) 다루듯이 한국을 상습적으로 하대(下待)하는 중국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도 없다.

가장 현명한 대응법은 트럼프와 '원 팀(One team)'이 돼 미국이 확실하게 더 잘되도록 힘을 실어 주는 일이다. 2024 대선에서 트럼프를 도와 최대 공신이 돼 잘나가는 일론 머스크처럼 한국도 그런 나라가 돼야 한다.

더 이상 트럼프를 경멸하며 트럼프의 미국을 강 건너 불 구경할 때가 아니다. 한국과 트럼프의 미국이 모두 잘되는 방안을 우리가 철저하게 고민해 찾아내고 결단해야 한다. 그 답안을 갖고 미국을 설득·견인해 '한미(韓美)의 황금시대'를 열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 수호·강화에도 이바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