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원 경북대 역사문화아카이브연구센터 연구원
'이즘 대구에 문둥병 환자가 자기의 병을 고치겠다는 욕망에서 사람의 간을 내어 회를 해 먹은 자도 있고 또 유아주를 담가 먹은 사실이 있다. 이는 미신에서이며 세상에 전생 차생 후생의 3생설을 설교하여 대중의 지배자에게의 순종과 피지배자로서의 불평을 무마하고 있으니 이는 종교다. 보통 사람들은 미신이라 하면 나쁘고 종교라 하면 점잖은 것으로 여긴다. 그렇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8년 9월 12일 자)
1948년 대구에는 밑도 끝도 없는 섬뜩하고 황당한 소문이 퍼졌다. 그중에는 한센병인 나병환자의 치료법이 있었다. 자신의 병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거나 심지어 사람의 간을 빼먹고 유아주를 담가 먹으면 병이 낫는다고 했다. 신문이 앞장서 허황한 미신이라고 알려도 소문은 좀체 숙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문맹률이 높아 신문 보도의 전파가 쉽지 않았다. 의료 혜택이 극히 제한적이었던 그 시절, 자신이나 가족의 병을 치료하려는 절박감은 안타깝게도 비정상적인 미신 행위로 곧잘 나타났다.
삶이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신에 빠졌다. 식량난과 민생고, 전염병 확산, 정치테러 등의 사회 혼란이 지속되자 각양각색의 미신 행위가 때를 만난 듯 성행했다. 사람들은 굿을 하고 부적을 지니면 병을 고치고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솔깃했다. 일상을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미신업자들은 때때로 현실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메신저가 되었다. 이 또한 미신업자들의 잇속 챙기기와 무관치 않았지만 말이다. 보다 못해 당국은 무당 행위 등을 처벌하겠다며 엄중 취체(단속)에 나섰다.
정부 수립을 앞두고는 이를 기념하는 축하 굿이 벌어졌다. 그만큼 무당들의 푸닥거리와 경 읽기가 유행했다. 굿이나 푸닥거리 비용을 대느라 가정불화가 일어나고 무당의 말을 믿고 치료 시기를 놓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당국은 굿과 푸닥거리를 금지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효과는 단발에 그쳤다. 1949년 10월에는 일주일간 미신 타파 주간을 정하기까지 했다. 굿과 푸닥거리를 줄여보려는 고육지책이었다.
미신의 유혹은 늘 사람들 곁에 있었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미신의 힘으로 무마하려 했다. 굿과 부적 같은 갖가지 비방이 등장한 이유였다. 게다가 미신은 빈부조차 따지지 않았다.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바람은 가난한 사람들의 공통분모였다. 또 부자는 그들대로 돈이나 쌀자루를 들고 무당을 찾아 또 다른 복을 빌었다. 이러니 당국은 미신 타파 운동을 이듬해 다시 벌였다. 입춘을 지난 설날쯤이었다. 이 시기에 한 해의 신수를 보고 굿이나 푸닥거리를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미신을 둘러싼 논란은 해방기에 한정된 일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아프거나 삶이 고달픈 사람들은 무당, 점쟁이, 복술 등을 통해 생활의 불안을 떨쳐 내려 했다. 혹세무민의 비판에도 미신이 활개 친 이유였다. 미신의 부작용 또한 다르지 않았다. 경북 선산에서는 홍역 귀신을 쫓는다며 무당 말대로 뜨거운 밥솥을 씌웠다가 아이를 잃는 일도 있었다. 1938년 대구부에는 무당과 점쟁이가 400여 호에 이른다는 보도도 있었다. 한 푼이 아쉬운 가난한 사람들이 되레 미신업자 주머니를 채워주고 있다는 우려를 할 정도였다.
미신의 유혹은 시간과 때를 가리지 않았다. 1950년대 자유당 시절에는 단속 대상이었던 점쟁이들이 선거운동원으로 등장했다. 동원된 점쟁이들은 민주당 등 상대 당 후보에게 찾아가 출마 포기를 종용했다. 출마하면 패가망신한다며 낙선의 점괘를 들이밀었다. 관상쟁이나 점쟁이들은 이처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거판에 발을 디뎠다. 또 일부 권력자들은 선거를 매개로 미신에 푹 빠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신은 여전히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생활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막무가내로 배척하기도 힘들다. 예부터 골상이나 관상 등은 선인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풍습으로 이해되었다. 게다가 미신과 무속에 기대는 개인의 취향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시절 미신이 사적영역을 넘나들며 성행하자 문맹퇴치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데 더러더러 공감했다. 문맹의 시대로 다시 돌아온 걸까.
박창원 경북대 역사문화아카이브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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