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1년] 관건은 2026학년도 정원…골든타임 얼마 남지 않았다

입력 2025-02-04 15:37:34 수정 2025-02-04 15:39:23

정원 조정·대화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한시적 모집 중단' 강경 목소리까지
교육부 "예과 1학년 7천명 모두 교육 가능" vs 의료계 "시설 부족한데 어떻게?"
이주호 교육부 장관·김택우 의협회장 회동 공개 후 공식 논의 어려워져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의사 가운이 남겨져 있다. 연합뉴스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의사 가운이 남겨져 있다. 연합뉴스

2025학년도 의대 정원으로 불이 붙은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2026년 의대 정원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의대생들이 증원에 반발해 휴학계를 내고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파행적 상황에서 정부도 의료계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의대 교육은 무너진다'는 상황 인식은 동일하다. 따라서 내년도 의대 정원에 대한 양 측간 합의만 이뤄진다면 의료 정상화는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입시 일정을 고려하면 2월 중에는 내년도 의대 정원을 결정해야 하기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문제는 의료계와 정부가 해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너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원점 재검토 방침을 밝히면서 대화 테이블로 유도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증원 이전으로 되돌아가거나 아예 내년에 의대생을 뽑지 말자는 강경한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면서 논의의 속도는 물론 대화 자체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 증원? 동결? 감원?…"어차피 조정은 불가피"

4일 정부에 따르면 애초 3천58명이던 의대 정원은 작년 2월 2천명 증원 발표에 따라 5천58명으로 늘어났다. 2025학년도에만 1천509명이 증가한 4천567명이었다.

현재로선 새로운 의사 결정이 없을 경우 2026학년도 정원이 5천58명으로 유지되기에 의정 갈등 해소의 첫 단추를 끼우기 위해선 조정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규모에 대해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유연하게 협의하겠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결과적으로 숫자가 변경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협의에 의한 정원 변화를 시사했다. 구체적 숫자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동결이나 감원도 충분히 고려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의료계는 동결 또는 감원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우선 대한의학회는 증원 이전 규모인 3천58명으로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KAMC)도 유사한 입장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아예 2026학년도는 모집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모집 중단'이 결국 전공의와 의대생이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게 이 주장의 이유다.

왕규창 전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은 "전공의와 학생이 수긍할 안을 내놔야 하고 그것은 정원이 '0명'이어야 한다"며 "그렇게 시작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주장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대구 시내 한 개원의는 "그렇게 된다면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의대교수들이 지난해 10월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한국의학교육평가원 무력화 저지 결의대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교수들이 지난해 10월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한국의학교육평가원 무력화 저지 결의대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늘어난 인원에 맞는 교육 가능할까

현재 수업에 들어오고 있지 않는 학생들이 복귀해도 문제다. 강의실을 떠난 의대생들이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 대거 복귀할 경우 '1학년생'만 7천여명에 달하는데, 이들을 모두 교육시킬 시설이나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새해 초 신설한 의대국 산하에 '교육 지원 전담팀'을 별도로 꾸려 전국 39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인 차의과대 제외)와 올해 교육 대책을 협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는 '1학년 의대생'이 최대 7천명을 넘어선다고 해도 당장 현장에서의 교육 차질은 크게 없을 것으로 보고있다. 의예과 1학년 수업은 대부분 교양과목이라 수업 운영이 대학본부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본과로 넘어가기 전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든다.

다만 교육부는 1학년 수업에 어려움이 있는 대학에는 상황에 맞춰 다각도로 지원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생각이 다르다. 최근들어 의대 교육과정이 임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에 의예과 1, 2학년 학생들도 의대 기자재를 써서 실습해야 하는 수업이 종종 편성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학병원 교수 출신 한 개원의는 "요즘 의대 교육과정 중 예과 2학년 일부 과목은 예전의 본과 1학년 과목이 내려간 경우"라며 "의대 안에 늘어난 정원을 가르칠 시설이나 인력이 미비하면 교육의 질은 부실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구 중구 경북대 의과대학 정문으로 한 학생이 걸어 들어가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 중구 경북대 의과대학 정문으로 한 학생이 걸어 들어가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골든타임은 4주…대화 가능성은 여전히 바닥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이 2월 중에는 결정돼야 하는 만큼 정부와 의료계는 어떤 식으로든 논의를 본격화해야 하지만 대화를 공식화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달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비공개 회동이 외부에 알려지자 의협은 "정부가 신뢰를 훼손했다"며 반발했다.

정부와 의료계를 대표하는 두 사람의 만남이 의정 간 공식·비공식 논의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일단 표면적으로는 감정의 골을 더 판 꼴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집단휴학 중인 3천여명의 2024학번은 물론 올해 입학한 4천여명 2025학번이 동시에 '수업 거부'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된다면 예과 1∼2학년 수업 마비 현상이 도미노식으로 본과 교육 지연으로 이어지며 의대교육 대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새해 들어서도 의정 갈등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의실을 떠난 휴학생들의 전면적인 복귀는 사실상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내놓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대 교수는 "복귀하고 싶은 학생이 있어도 '블랙리스트 사태'를 겪고 난 뒤라 쉽게 복귀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아마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하지않을까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