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痛哭)의 세밑이다. 179명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 비극은 왜 반복될까.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허망하다. 비통하다. 먹먹하다. 국가적 참사가 발생하자 여당과 야당은 일제히 정부에 '최선을 다하라'고 촉구한다. 또 부질없는 말부조인가. 당장 정쟁(政爭)을 멈추라. 여야 따로가 아닌 국회가 정부를 도와라. 그게 진정한 애도(哀悼)다.
암울한 2024년이 저문다. 정치적 내전(內戰)은 소강 상태가 없었다. 끝내 전면전(全面戰)이 터졌다.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과 관련 수사,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 경제·안보 위기…. 이 난리통에도 정치권은 제 살길만 찾는다. 국민들의 평온은 정치권의 야욕(野慾)에 짓밟혔다.
오만(傲慢)한 권력에 취한 대통령은 '탄핵의 강'에 섰다. 온갖 불법 혐의로 재판을 받는 야당 대표는 '별의 시간'(독일 문학의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의 표현, '운명을 가르는 결단의 순간')을 잡았다. 격랑의 탄핵 정국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달렸다. 파면 여부와, 파면될 경우 조기 대선의 시점에 이목이 쏠려 있다.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사건 등의 2심 재판도 초미(焦眉)의 관심사다. 그 결말은 나라의 명운을 좌우한다. 이 꼴을 지켜봐야 할 국민들은 참담하다.
민주당은 헌재를 향해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의 '신속 결론'을 압박한다. 최상목 권한대행에게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하라고 다그친다. 안 그러면 탄핵하겠단다. 이 대표의 '대선 꽃길'에 걸림돌이 생길까 속이 타는 모양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헌재의 심판 기한(6개월)을 100% 활용하겠다는 태세다. 국회 탄핵안 가결 직후 윤 대통령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며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최대한 끌면서, 법원에 이 대표의 신속한 재판을 재촉한다. 나라와 국민을 사지(死地)로 몰아넣고도 자신들의 실리만 챙긴다.
국민들은 먹고살려고 아등바등인데, 정치인들은 권력 놀음에 아득바득이다. 일찍이 유치환 시인은 정치 모리배를 향해 일갈(一喝)했다. "먼 후일 오직 역사만이/ 너희의 곡직을 단죄할 것이라 치더라도/ 쓸개 있거든 듣거라/ 이 오탁(汚濁)과 도탄의 시궁창에서/ 끝끝내 인민만 우롱할 것이냐."(시, '개헌안 시비'의 일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기업은 2류,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다. 우리 대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섰다. 한류(韓流)는 세계를 물들였다.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차지했다. 정치는 진영과 팬덤에 갇혀 퇴행했다. '4류'도 과분하다. 그냥 '등급 외'다. 정치는 국민을 배반했다. 양대 정당은 '광장'과 '아스팔트' 지지층에만 기대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사람, 그들에게 유리한 방식이 아니면 깡그리 반(反)민주다.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은 경제를 수렁에 빠뜨렸다. 정국 불안과 미국 트럼프 신행정부의 정책 변수는 실물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흥성거려야 할 세밑 거리는 한산하다. 식당 주인과 택시 기사들은 "손님이 없다"며 푸념한다. '나라 안정'이 국민들의 새해 1호 소망이 될 판이다. 민주화 40년 역사에 오점을 남긴 2024년이 막을 내린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은 성찰의 의례다. 저무는 강에 오욕과 통한을 씻어 보내고, 새해의 여명(黎明)을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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