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국민의힘이 길을 잃었다. 민주화 이후 여러 차례 위기에 빠졌던 보수정당은 큰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자신의 오류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그것과 분명하게 선을 그으며 새롭게 출발했다. 단절 전략(delinking strategy)과 자기 혁신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보수정당이 가장 오래 시달렸던 것은 정통성의 위기였다. 군부 쿠데타 세력의 선거 기구로 만들어졌다는 태생적 성격 때문이었다. 이 위기는 김영삼 대통령이 정치화된 군부를 전광석화와 같이 숙청함으로써 해결되었다. 군부의 탈정치화라는 단절 전략으로 보수정당은 군부 세력의 하수인이라는 말은 더 듣지 않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투명성의 위기였다. 보수정당에는 늘 부패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차떼기' 정당이라 불리는 큰 정치자금 스캔들에 직면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그들은 극약처방으로 과거와 단절했다. 국민에게 즉각 사과하는 한편 당 간판을 떼어 내리고 여의도 광장 한복판에 천막 당사를 친 후 여름 땡볕을 견뎠다. 그리하여 한나라당은 민의의 징벌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통치 능력의 위기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무능 때문에 민심 이반이 심각했다. 이때 박근혜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당을 혁신했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 후보가 되어 경제민주화, 복지 강화 등 보수정당이 기존에 추구하던 정책 흐름을 과감하게 바꾸어 선거에서 승기를 잡았다. 분명한 단절 전략으로 위기에서 탈출하였다.
그랬던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무능과 비선 논란으로 탄핵이 되었을 때 보수정당으로서는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탄핵의 강을 건너자'라는 젊은 지도자 이준석을 대표로 뽑아 결국 경쟁 정당과 겨뤄 승리하였다. 단절 전략의 성과였다.
정체성의 위기도 큰 숙제였다. 보수정당은 전통적으로 반공과 성장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그것을 위해 독재도 불가피하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보수정당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반공 자유가 아니라 개인의 자율과 권리를 실현하는 자유이며 성장도 사회경제적 양극화라는 그늘을 해결하는 성장이라고 하였다. 이른바 기존의 보수와는 다른, 따뜻한 보수라는 비전으로 정체성의 위기에서 헤쳐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 상황은 그간에 겪었던 모든 위기의 원인이 좀비처럼 살아 나오는 형국이다. 대통령은 반대 세력을 다스리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여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적을 공격하기 위해 특수 훈련을 받은 무장병력이 국민을 향해 돌진하도록 했다.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추문은 꼬리를 물고 있다.
의혹을 밝혀야 할 사정 기관은 공정성을 상실했다. 대통령 부부의 잘못은 모른 척하고 야당 측 지도자들에게는 가혹하다. 정치적 반대 세력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시대착오적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한시가 급한 사회 개혁 과제들은 대통령의 무능과 오만으로 기약 없이 미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이런 위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잘잘못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당의 의무다. 그것이 책임정치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민의힘은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위헌 위법이라는 것을 원조 보수 논객들조차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국민의힘만 뭉개고 있다. 얼버무리는 것을 넘어 대통령을 감싸기까지 한다. 이것이 보수정당을 유지하고 보수를 지키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입장을 말하는 것 같은데 참 어리석은 일이다. 국민을 생각하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행실이 온당하지 못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압도적 의견이다. 그들은 '반국가 세력'이 아니다. 그들은 "윤석열이 틀렸다. 책임을 지라.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고 외치는 것이다. 그들은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부르며 세상의 진정한 변화를 노래하고 있다.
이런데도 대통령 감싸기만 하고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하면 국민의힘의 자강이 이루어질까? 아니면 자폐가 될까? 국민의힘, '단절 전략'과 자기 혁신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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