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6년 11월 17일 미국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를 외국 정상으론 맨 처음 만났다. 이날 오전 10시 50분쯤부터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회동에서 아베는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시종일관 강조했다.
"1989년 대비 중국은 군사비 지출을 40배 늘렸다. 보유 잠수함 수는 중국(61척)과 미국(70척)이 거의 비슷해졌고, 중국은 성능을 빠르게 향상하고 있다. 중국 해군의 공격 대상은 미 해군 제7함대이다. '항행의 자유' 작전이 백악관의 반대로 충분히 자주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베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과 일본, 영국 3국이 단합해 소련을 격퇴했듯이 이번엔 중국에 맞서 미국, 일본, 유럽이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개념으로 발전한 그의 구상은 8년 후인 지금도 미국의 핵심 국가안보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다.
다음 달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정부는, 트럼프 대선 승리 연설에서 표출된 대로, '미국의 황금 시대(golden age) 달성'을 최고 목표로 내걸고 있다. 그런데 미국 조야(朝野)에선 중국이 미국의 이런 꿈을 실존적으로 가로막는 최대 위협 국가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조차 2년 전 백악관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에서 "중국은 기존 국제질서를 바꿀 의지와 군사·경제·외교·기술적 능력을 갖고 있는 유일한 나라로 미국의 가장 중대한 지정학적 도전"이라고 못 박았다. 중국은 14년 연속 제조업 생산력 세계 1위라는 힘을 원동력 삼아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올해 10월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중국은 현재 세계 10대 기업(방위와 비방위 합산) 명단에 4개가 포함돼 있는데, 이 중 1위와 2위가 모두 중국 기업이다. 중국은 2023년 세계 최다(67회) 우주 발사를 실행하며 우주 산업에서도 약진하고 있다. 미·중의 해군 함정 건조 능력은 1대 233의 비율로 중국의 압도적 우위이다.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미국은 황금시대는커녕 2등 국가로 추락을 피할 수 없다.
올해 대선에서 트럼프가 중국에 대한 무역최혜국(MFN) 대우 폐지, 최소 60% 관세율 부과, 미국 기업의 대(對)중국 투자 금지 같은 공약을 내건 것은, 양국 관계가 '관리 가능한 경쟁'을 넘어 '전면적 대결'로 진입했다는 판단에서다. 트럼프 2기 정부에는 압도적인 국방력과 에너지 패권, 위안화 하락 유도, 서방 자본의 중국 이탈 촉진 같은 카드를 총동원해 중국의 명줄을 끊어야 한다는 결의(決意)로 충만한 장관급 인사들이 어느 정권보다 많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정부의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딥 스테이트' 같은 국내 반대 세력 혁파 외에 미국 패권을 흔들며 미국 약화 공작을 펴는 중국을 총체적으로 억눌러 승리하려는 종합 전략이다. 트럼프 2기의 국방·교육·불법 입국·선거제도 개혁의 밑바탕에는 모두 반(反)중국 기조가 깔려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한국은 현재 디스플레이·2차전지·휴대폰·조선·자동차·철강을 포함한 거의 모든 주력산업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다. 트럼프의 대(對)중국 압박은 이런 우리에게 숨 쉴 공간을 열어 주고 자유민주 국제 진영 안에서 한국이 제조업 최강국으로 도약하는 새로운 디딤돌이 될 수 있다. 한국은 독일·일본보다 제조업 포트폴리오와 공정 능력이 뛰어나다.
이제 우리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전략이 통하지 않음을 절감하고 '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이라는 '안미경미(安美經美)' 노선을 확고하게 해야 한다. 전면적인 한미동맹 업그레이드, 첨단산업 글로벌 공급망에서 린치핀 확보를 위한 미국과의 협력 확대, 중국의 불공정 경쟁에 대한 국제적 연대·반격 등을 추진해야 한다.
반대로 우리가 중국에 발목 잡혀 어정쩡한 대응으로 "한국은 미국의 진짜 친구가 아니다"는 낙인이 굳어진다면, 트럼프 2기 정부는 감내하기 어려운 경제적·군사적 고통을 한국에 가할 것이다. 중국에 "셰셰(謝謝·감사합니다)"만 하다가는 코리아의 운명이 크게 위태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중국 몰락' 전략을 기회로 활용해 한국의 국가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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