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조두진] 인생 후배에게 5만원을 주었더니

입력 2024-12-02 19:49:12 수정 2024-12-03 10:25:20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7년 전 이맘때였다. 대구에 있는 디자인 회사 '밝은사람들' 대표 부부는 자식 또래 직원 28명에게 각각 5만원이 든 봉투와 카드 한 장을 건넸다.

'연말까지 각자 5만원을 불우 이웃을 돕는 데 써라. 성금으로 내든, 선물을 사서 주든 본인이 고민해 봐라. 이왕이면 정성을 담은 편지도 카드에 써서 드리면 좋겠다.'

얼마쯤 후 직원들 사이에서 그 5만원을 어떻게 썼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한 직원은 5만원을 어떻게 쓸까, 고민 끝에 회사 건물 주차 관리원을 떠올렸다고 한다. 겨울임에도 얇은 겉옷을 걸치고 일하는 아저씨였다. 직원은 받은 5만원에 자기 돈을 보태 두툼한 겨울 잠바를 샀다. 그리고 '주차 관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전달했다. 아마 주차 관리 아저씨에게 그해 겨울이 조금은 따뜻했을 것이다. 더 좋은 것은 겨울 잠바를 장만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직원이 성장했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겨울 추위를 누그러뜨릴 힘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직원은 자신이 가끔 들르는 붕어빵 노점(露店) 장수를 생각했다. 붕어빵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 주던 부부 노점상이었다. 디자이너인 이 직원은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 예쁜 붕어빵 봉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붕어빵 봉지 한 꾸러미를 노점 부부에게 전달했다. '포장지가 예쁘면 붕어빵이 더 잘 팔리지 않을까요'라는 편지와 함께. 붕어빵 봉지를 받아든 부부의 환하게 웃는 얼굴에서 직원은 벅찬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봉지를 만들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기쁨을 얻은 것이다. 붕어빵 봉지를 만들기 전과 만든 후의 직원은 동일인이지만 다른 사람이 됐다.

디자인 회사라고 하면 '창의성'을 강조할 것 같지만 '밝은사람들'의 사훈은 '바르게·선하게·어질게'이다. 사내(社內) 벽면 곳곳에 사훈이 걸려 있다. 그 덕분이지 몰라도 직원들은 돈벌이와 거리가 먼 일을 곧잘 벌인다.

직원들은 해마다 4월이면 '이웃돕기 플리마켓'을 연다. 수익금은 대구농아인협회에 전액 기부한다. 청년창업자들을 위한 브랜드 디자인 재능 기부, 벽화 재능 기부도 이어오고 있다. 직원들은 또 '고담 대구'라는 말을 추방하기 위해 밝고 환한 표정의 캐릭터 '써니(sunny)'를 개발해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 배포했다. '더 밝은 대구' 스티커를 제작해 자동차와 건물 엘리베이터에 부착하고,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자사(自社) 우편물 봉투에도 부착하고 있다. 대구의 자랑거리를 찾아 알리는 일에도 정성을 쏟는다.

이런 일을 왜 할까. 이 회사 대표 부부의 답은 명료(明瞭)했다.

"직원들의 역량을 키우고, 월급을 주는 것으로 인생 선배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직원들이 선한 마음을 키우고, 더 반듯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도 선배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자면 연습이 필요하고, 선배들이 그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염력(念力)으로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기적(奇跡)이 아니다. 5만원이 5만원으로 끝나지 않고 10만원이 되고, 두툼한 겨울 잠바가 되는 일, 그래서 자신에게 겨울을 녹일 힘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 기적이다. 디자인 실력이 월급을 넘어 붕어빵 노점 부부의 얼굴에 환한 미소로 피어나는 것, 그 미소가 좋아서 내 태도가 변하는 것, 내 작은 마음이 조금 어진 세상을 만드는 것, 그래서 범죄자가 됐을지 모를 아이를 반듯한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 그런 것이 기적이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기적을 일으킬 기회를 주시면 좋겠다. 한번 선(善)을 경험해서 기쁨을 느끼면 갈수록 더 선해지고, 한번 악(惡)을 경험해서 작은 이익을 얻으면 점점 더 큰 악을 찾게 되는 것이 사람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