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수종의 이슈진단] 자유에의 길

입력 2024-11-28 06:30:00

곽수종(리엔경제 연구소 소장, 경제학 박사)

프리드리히 하이예크(Friedrich Hayek)는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는 그 어떤 체제보다 더 큰 번영을 가져다 준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자유가 주어지면 경제적 번영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는 자유의 중요성을 경제적 번영으로 찾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문명에 있다고 한다. 하이예크에게 있어 자유의 중요성, 자유의 존재이유는 인간 문명에 있다.

자유를 통해서만이 문명이 진화할 수 있다고 본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문명은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고 변화가 야기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조건이다. '품격'이다. 그는 나아가 정부는 문명의 원천이 될 수 없다고 한다.

한 국가의 경제발전은 자유의 확산과 확장 덕택이지 국가주도 개발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는 인류 보편적 가치로 정신과 행동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문명은 진화하고, 품격은 높아지며, 이러한 사회 변화 과정을 경제적 번영이라 부른다. 따라서 한국경제의 급속한 성장과 발전은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이 한 축을 이루긴 했지만, 경제의 발전에 따라 확장되고 확산된 '자유'의 가치에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미쳐 정부가 따라가지 못하면 정부는 실패한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 제조업자들의 박애심 덕분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돈벌이에 대한 관심 덕분이다." 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공익(共益)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없고 자신이 공익에 얼마나 이바지하는지조차 모른다. 각 개인의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부수적인 결실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레 미제라블' 속 장 발장은 빵 하나를 훔친 죄로 19년을 복역한다. 당초 빵을 훔친 것은 5년 징역이었지만, 투옥 기간 동안 도합 4 번 탈옥을 시도하는 바람에 복역 기간이 약 4배나 늘어났다. 결국 빵 하나 훔친죄로 인해 19년의 자유를 구속당한 셈이다. 빅토르 위고는 사실 나폴레옹 휘하의 장교였던 그의 아버지와 왕정주의자였던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당시 사회의 기득권자였다. 하지만 프랑스 역사의 격변기 속에서 그는 변해갔다. 기득권층의 든든한 지지자에서 망명자로, 철저한 출세주의자에서 독립적인 저항자로, 중산층을 대변하는 인물에서 진보적 운동의 대변인으로 변해갔다.

민중들의 삶에 대한 위안과 사회개혁의지에 대한 열정이 그를 번민하게 했다. 그가 경험한 사회는 '자유'의 격변기였다.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친위 쿠데타에 저항하다가 브뤼셀로 망명했고, 영국 건지섬에 머물 때 가난하고 탄압받으며 배척당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비슷한 몇 가지 사례도 있다.

예컨대 1775년 3월 23일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세인트 존스 교회에서 페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연설로 미국 정신의 본질, 즉 불굴의 자유와 자결 추구를 강조했다. 1789년 10월 5일 프랑스 대혁명 당시 경제적 궁핍으로 베르사이유 궁으로 나아가던 시민들의 구호 역시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였다.

지난9월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개인사업자 종합소득세 신고분 1146만4368건 가운데 약 75%인 860만9018건이 월 소득 100만원, 연 소득 1,200만원 미만이었다. 이 중 소득이 전혀 없다는 '소득 0원' 신고분도 8.2%, 94만4250건이었다. 민생경제의 민낯이다.

국가경제의 민낯도 어둡다. 우리 경제가 빚으로 포위되어 있다. 2천700조원에 달하는 기업부채가 있고, 가계부채는 2천200조원에 이르며, 정부 부채는 1천100조원을 넘는다. 여기에 500조원 넘는 비영리공공기관과 비금융공기업 부채를 더하면 국가부채 규모는 경상 GDP의 300%를 넘는 6천500조원 수준이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부동산 담보부 부채까지 포함하면 7천000조를 거뜬히 넘길 태세다. 더구나 앞으로 정부가 책임져야 할 4대 국가연금 채무를 더하면 국가부채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국가부채의 상환은 미래 세대에게 전가된다. 저출산과 자살율 급증 등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는 단초다.

추운 겨울날 길가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찐빵과 만두 가게를 지날 때 잠시 호주머니 속 가벼워진 지갑을 만지작 거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에게 자유가 있는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곽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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