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김미옥] 볼 수 있는 눈

입력 2024-11-21 11:46:57 수정 2024-11-21 12:08:25

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어디서 나타났는지 벌레 한 마리가 주위를 맴돈다. 윙윙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좀 전에 창문을 열어뒀던 틈새가 눈에 띈다. 다시 나갈 수 있도록 창문을 활짝 열었다. 손으로 휘휘 저으며 밖으로 나가도록 유도한다. 어찌 된 일인지 넓은 창문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닫힌 유리창 앞에서 헤매고 있다.

제자리를 맴돌기만 한다. 벌레는 틈새를 이용해 새로운 세상에 들어왔지만 막상 어떻게 나가야 할지 몰라 좌충우돌이다. 그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보면 열린 창문은 외면한 채 계속 유리에 부딪히면서 허둥대는 모양새다. 미미한 날개를 퍼덕거리며 요란하게 주위를 오가는 모습이 당혹스러워 뵌다. 넓은 길로 나가도록 손짓하지만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집안에 다가올 일들을 알고 있는 듯 예측하셨다. 가족의 대소사를 결정하는데 방향을 제시하거나 중요한 선택의 갈림에서 부모님의 조언은 대체로 옳았다. 나는 간혹 말씀대로 따르지 않아 당황한 적도 있었고, 날씨, 준비물, 행동거지 등 소소한 일에도 고집을 세워 낭패를 겪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그저 신기했다. 지금은 부모님께서 삶의 경험으로 터득한 연륜 때문이란 걸 안다.

사람은 저마다 한계를 느낀다. 전체를 바라보면 이해가 될 것을 좁은 시야 속에서 맴돌며 스스로 희망을 꺾기도 한다. 아마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에 열심히 매진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답답한 심정을 짐작할 것이다. 한참 시간이 흘러 상황이 파악되면 비로소 멈춰야 할 때를 직감한다. 전체를 보지 못하니 종종걸음만 반복하게 되고 잘될 것만 같은 착각에도 빠진다. 과연 미래를 짐작하고 볼 수 있는 눈은 따로 있는 걸까.

벌레는 여전히 창가 주위를 맴돌고 있다. 저렇게 나가는 경로를 찾지 못하다가는 창틀 아래에서 숨이 멎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대학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학업과 연구에 빠져있을 즈음 길을 헤매던 생각이 난다. 그야말로 혼자 유리창에 부딪히며 허둥대고만 있다는 생각에 우울한 나날이었다. 지나고 보면 그 시기에 거쳐야 할 과정이었음을 깨닫지만, 이후로도 사람이나 일에서 새로운 환경과 접할 때면 여전히 난감한 기분을 느낀다.

힘들게 노력한 것은 놓아버리기 어렵다. 운 좋게 자신에게 맞는 출구를 찾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며 선뜻 나갈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긴 시간 정성을 들인 일이라면 더욱 어렵다. 내게 맞는 방향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일에는 책임과 대가가 따르듯 뜻대로 된다고 모든 게 흡족한 건 아닐 게다.

삶은 단단하게 허리춤을 부여잡고 힘을 내야 한다. 자기 틀에 갇혀버리면 유리창 앞에서 맴돌 뿐 저 너머 세상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벌레는 창문 앞에서 어찌할 바 몰라 한다. 나는 다시 힘차게 손을 저어 나갈 길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