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24>굴 이야기

입력 2024-11-22 04:30:00

조류 거칠지 않은 서해안 굴 유명세…남해지역 전국 생산량 80~90% 차지

국내의 수하식굴 산업은 1960년쯤 시작된다. 그 이전까지는 조간대가 넓은 서해안에서 투석·지주식으로 주로 키웠는데, 이 수하식이 남해에 들어오면서 굴 주산지가 서해에서 남해로 바뀐다.
국내의 수하식굴 산업은 1960년쯤 시작된다. 그 이전까지는 조간대가 넓은 서해안에서 투석·지주식으로 주로 키웠는데, 이 수하식이 남해에 들어오면서 굴 주산지가 서해에서 남해로 바뀐다.

우리나라에는 두 개의 굴(蠣)이 있다. 얼굴과 동굴이다. 이 두 굴이 만나 낳은 자식이 있는데 그 이름은 진짜 굴이다. 김장철이 돌아오면 굴철도 돌아온다. 한국 김장굴의 최대생산지인 통영시 용남면 수하식굴수협 초매식도 지난달 15일 열렸다. 바야흐로 2024년 굴 시즌이 개막된 것이다. 굴 상인들의 단골 마케팅 문구가 있다. '굴을 먹은 남자는 미인을 얻고 굴을 먹는 여인은 영웅을 얻는다'이다. 굴이 등장하면 전어 열기는 좀 숙진다. 대신 벌교 꼬막, 구룡포 과메기, 강원도 인제 황태, 홍어 시즌은 더욱 본격화된다.

굴. 일명 '석화'(石花), '바다의 우유'로도 불리는데 세기의 바람쟁이였던 카사노바는 아침마다 그 굴을 50개씩 먹었고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는 한 번에 1천400개가량의 굴을 먹었다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굴 껍데기를 '모려(牡蠣)라고 하는데 중국과 일본의 굴의 별칭이기도 하다. 굴이란 단어가 들어간 멋진 영어 문장이 하나 있다. The world is your oyster(모든 기회는 열려 있다)이다.

◆처처에 별별 굴들

국내 굴은 남해와 서해가 양대 축. 굴은 조류가 거친 곳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서해안에서 일찍이 굴이 유명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대규모 굴 양식은 조류가 거칠지 않은 내 만에서 양식이 이루어진다. 통영과 거제와 여수에서 굴 양식이 발달한 이유다.

김장철과 맞물려 등장하는 햇굴의 70% 정도가 통영에서 생산된다. 특히 용남면⋅도산면⋅산양면 일대에서 굴 양식이 왕창 이뤄진다. 거제에도 거제면⋅둔덕면⋅사등면 일대에 굴 양식장이 많다. 김장굴은 보통 양식으로 생산되는데 '참굴'이라 하고 서해안은 갯바위에 붙은 걸 채취하기 때문에 '갯굴'이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강에서도 굴이 수확된다. 바로 '강굴'이다. '벚굴'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벚꽃 철인 봄이 제철이라서다. 국내에서는 남해와 만나는 섬진강 하구,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의 망덕포구와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의 신월포구에서 자란다.

통영시 용남면 한 바닷가에서 굴을 까는 어르신들.
통영시 용남면 한 바닷가에서 굴을 까는 어르신들.
통영 물굴젓.
통영 물굴젓.

통영의 대표적 굴 마을은 통영시 용남면 동달리 동암마을과 삼화리 양촌마을. 남해안 생굴은 경남 통영과 고성, 거제, 마산, 전남 여수를 중심으로 매년 10월부터 늦게는 이듬해 4월 말까지 4만t 이상이 생산된다. 이는 전국 생굴 생산량의 80~90%. 이 굴은 모두 통영에 있는 전국 유일 굴수하식수협을 통해 전국에 보내진다.

통영식 박신장 굴 까는 장면.
통영식 박신장 굴 까는 장면.

'수하식굴'은 양식굴의 대명사로 불리는데 굴을 바다에 늘어뜨려 양식하는 방식이다. 찬바람이 불면 통영에서는 아녀자 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모두 '박신장'(剝身場)으로 일하러 가기 때문이다. 박신장이란 '굴껍질 벗기는 작업장'이란 뜻이다. 새벽 4시를 조금 넘기면 통영시에서 아녀자를 태우고 와서 박신장 앞에 내려놓는 봉고차 전조등 불빛이 어촌을 깨운다. 80호가 모여 사는 양촌마을의 박신장은 모두 10여 군데. 굴마을답게 굴 껍데기가 모여 형성된 굴담과 굴탑이 인상적이다.

나도 그 마을을 현장 취재해서 알지만 거기 아녀자들의 손목은 말이 아니다. 통증이 심해 일하는 중간 뜨거운 물에 한 손을 담그기까지 한다. 일당도 시급이 아니라 깐 무게만큼 돈을 지불한다. 많이 버는 사람은 하루 30만 원을 넘게 번다.

◆굴양식의 역사

국내의 수하식굴 산업은 1960년쯤 시작된다. 그 이전까지는 조간대가 넓은 서해안에서 투석·지주식으로 주로 키웠는데, 이 수하식이 남해에 들어오면서 굴 주산지가 서해에서 남해로 바뀐다.

서해안 지주식굴.
서해안 지주식굴.

양식의 시작은 굴을 종착시키는 조가비 엮는 작업부터. 굴은 6~8월 산란을 한다. 때를 맞추어 조가비를 엮은 줄을 바다에 내리는데, 이를 '채묘'(採苗)라 한다. 채묘한 굴은 두 번째 겨울에 수확된다. 깐 굴의 크기는 보통 8g 이상, 큰 것은 12g 정도. 인종 종패장에서 가져온 종패를 매달아 키우는 양식줄을 지탱하는 가로 밧줄 길이는 200m. 40㎝ 간격으로 6.5m 줄에는 굴 종패 25~26개가 붙는다. 굴이 바닥에 빠지지 않게 스티로폼 부표를 단다. 요즘은 담치가 극성을 부린다. 굴줄이 올라오면 60㎝ 길이로 잘라줘야 담치 제거기가 잘 작동된다. 굴은 2년 정도 키워야 경매장에 나올 수 있다.

굴의 종류도 가지가지. 한국의 굴은 크게 양식굴과 자연산굴로 나뉜다. 서해안 굴의 메카는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포구 굴맛 체험장과 천북 굴단지. 그래서 서해안 굴이 '천북굴'로 불린다. 여긴 통영과 달리 수하식이 아니고 직접 바위에 붙은 굴을 쪼아 속을 캐내는 방식. 아낙네들이 갈고리로 물이 들어오는 오후 2시까지 일한다. 또한 거제 구조라 해수욕장 인근에선 갓난아기 머리만 한 자연산 '통굴'이 명물이다.

통영굴보다 한 달 늦게 자연산 굴 채취가 이뤄지는 곳이 있다. 어리굴젓 생산지로 유명한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 11월 중순부터 내년 봄까지 제철인데 요즘 굴 수확철을 맞는다. 간월도 굴은 표면에 털 모양의 돌기가 많아 양념이 골고루 배 김장용이나 어리굴젓용으로 인기가 높다. 서산지역에는 간월도를 포함해 모두 7곳의 어리굴젓 가공업체가 입주 연간 100여t의 어리굴젓을 생산하고 있다.

'태안반도의 땅끝마을'로 불리는 태안군 이원면 내리 '만대마을'. 여기에 기네스북이 인정한 2.7㎞ 벽화가 이원방조제에 조성돼 있다. 이 마을은 동절기 '태안 깜장굴'의 본고장. 이 해역은 서해안에서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세다. 자연산 굴은 갯벌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모래바닥인 남해안 수중에서 자라는 수하식굴에 비해 더 쫄깃하고 검고 작아서 서해안 어리굴젓의 기본형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밖에 삼천포 갯벌소굴, 여수돌산 생굴, 천수만 바위굴, 섬진강 강굴, 고흥 소굴 등도 있다.

◆어리굴젓과 진석화젓

서산 어리굴젓.
서산 어리굴젓.

굴도 맛있지만 그걸 발효시킨 굴젓은 맛이 증폭돼 밥도둑이 된다. 어리굴젓과 진석화젓은 전혀 다른 음식이다. 어리굴젓은 짜지 않게 단기일 내 담근 굴젓. 여기에 고춧가루를 추가해 먹는다. '어리'란 말은 '덜되고 모자란다'는 뜻을 가진 '얼'이 어원이다. 얼간으로 담근 젓을 어리젓이라 한다. 젓갈 담글 때 소금은 젓갈 재료의 20~30%. 하지만 어리굴젓은 보통보다 훨씬 적은 7% 수준. 단단하고 작은 굴이 아니면 제대로 된 어리굴젓이 어렵다. 상온에서 쉬 상한다. 충남 서해안은 어리굴젓권이다.

'황해바다 석화야!, 석화야! 물결 타고 달빛 따라 간월도로 모여라. 황해바다 석화야! 석화야! 이 굴밥 먹으러 간월도 달빛 따라 모두 모여라 석화야…'.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 부녀자들은 소복을 입고, 이 노래를 부르면서 특산품인 굴을 위한 제를 올린다. '간월도 굴부르기 군왕제'다. 굴 풍년을 바라는 지역민들의 간절함이 담긴다. 옛부터 이곳 지역민들은 이 굴로 '어리굴젓'을 담가 먹었다.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 될 만큼 유명세의 명맥이 긴 '간월도어리굴젓'이다.

간월도에서 갯굴 채취 장면.
간월도에서 갯굴 채취 장면.

서산은 예전부터 바다의 우유로 불리는 굴 생산이 많았던 곳이다. 그러나 바다에서 자연산으로 딴 생굴을 다 소비할 수 없었기에 이를 저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소금에 염장을 한 젓갈로 만드는 것이었다. 전국에서 굴로 젓갈을 만든 곳은 서산이 유일했다. 그 젓갈이 어리굴젓이다. 색깔이 검고, 알이 작은 게 특징이다. 간월도 갯벌은 작은 자갈부터 큰 바위까지 많은 돌이 있는데, 이러한 돌에 붙어 있는 굴은 24시간 밀물과 썰물에 노출, 크게 성장할 수 없는 조건인 탓이다.

어리굴젓이 있다면 고흥에는 진석화젓이 있다. 생굴을 찾는 사람이 뜸하면 남은 굴을 모아 천일염과 소금에 버무려 한 달 이상 숙성시켰다. 그다음에 굴은 남기고 갈색으로 변한 국물만 따라 솥에 넣고 달인다. 마치 약을 달이듯이 민물을 넣어가며 24시간을 달인 후 식혀서 다시 남겨놓은 굴에 붓는다. 그리고 1년을 숙성시켜 내놓은 것이 진석화젓이다.

취도 진석화젓.
취도 진석화젓.

진석화젓은 1년 후 다시 국물만 따라서 같은 방법으로 달여 부어 놓으면 맛이 더 깊어진다. 이렇게 해가 지나면 굴은 삭아 형체를 알 수 없고 장만 남는다. 진석화젓은 굴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장을 먹기 위한 것이다. 그 맛이 진간장과 비슷하다.

어리굴젓과 진석화젓을 파고든 게 통영 물굴젓이다. 물굴젓은 통영과 거제에서 즐겨 먹는다. 통영 물굴젓은 굴과 소금을 버무려 약간 삭힌 후 무를 긁어서 넣는다. 반면에 거제 물굴젓은 무를 채 썰어 넣는다. 무를 넣는 것은 같지만 채를 썰어 넣느냐 수저로 긁어 즙을 만들어 넣느냐 차이가 있다고 '바다인문학자' 김준 전남대 학술전문연구 교수가 전해준다.

jebo@imaeil.com

사진설명

1 국내의 수하식굴 산업은 1960년쯤 시작된다. 그 이전까지는 조간대가 넓은 서해안에서 투석·지주식으로 주로 키웠는데, 이 수하식이 남해에 들어오면서 굴 주산지가 서해에서 남해로 바뀐다.

2. 서해안 지주식굴.

3. 간월도에서 갯굴 채취 장면

4. 통영식 박신장 굴 까는 장면

5. 서산 어리굴젓

6. 취도 진석화젓

7. 통영 물굴젓

8. 통영시 용남면 한 바닷가에서 굴을 까는 어르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