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영필] 고독사 방지를 위해

입력 2024-11-20 20:04:57

김영필 철학박사
김영필 철학박사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는 실패작이다. 결국 죽어야 하니까. 늙는다는 건 악이다. 나이 들수록 권력의지가 약해지니까. 인생은 사업으로 치면 수지맞지 않는 사업이다. 젊을 땐 원금의 이자로 살다가 나이 들면 원금을 까먹고 사니까. 과연 그런가?

대구 남구청의 '즐거운 생활지원단'의 고독사 방지팀 일원으로 일한 지 벌써 7개월째다. 국어사전은 고독사를 '홀로 사는 사람이 앓다가 가족이나 이웃 모르게 죽는 일'로 정의한다. 혼자 사는 사람은 모두 고독사 공포증(monatophobia)이 있을 것이다.

고독사는 노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1인 가구가 해마다 급증하는 가운데 혼자 사는 10명 중 8명은 '고독사 위험군'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여성보다는 남성, 나이별로는 50대가 더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4. 01)

모든 죽음은 고독하다. 죽음은 홀로의 사건이다. 나의 죽음을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그 누군가의 죽음은 나에겐 그저 하나의 슬픈 사망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실존적으로 말하면 가족의 죽음도 나에겐 객관적인 사건이다. 엄밀하게는 나의 죽음과는 상관이 없는 타자의 사망일 뿐이다. 죽음은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할 주체적 사건이다.

내가 하는 일은 홀로된 주검이 오래 방치되는 걸 방지하는 일이 우선이다. 물론 격일로 방문해서 대면 혹은 비대면으로 관계를 맺지만 혼자 사는 분들의 외로움을 얼마나 덜어 드리고 삶의 의욕을 북돋아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혼자 산다고 다 외로운 건 아니다. 하기야 외롭지 않은 인생이 있는가? 가장 행복한 사람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행복하게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외로움은 혼자라서 오는 게 아니다. 혼자 살기에 미숙하기 때문에 외롭다.

대구 남구종합사회복지관으로 출근해 간단한 회의를 하고 대상자를 방문한다. 고독사 방지팀은 2인 1조씩 14개 조다. 총 28명이 한 팀이 되어 일한다. 우리 팀은 2월부터 일을 시작해 2건의 고독사를 방지했다. 두 분 다 연로하신 분인데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 이틀 전 문고리에 걸어 둔 음료가 그대로 있어서 대상자 폰으로 전화를 하니 안에서 벨소리는 들리는데 받지 않아, 복지관 담당자에게 알리고 소방관과 경찰이 와 문을 따고 들어가 돌아가신 걸 확인했다. 두 분이 다 그렇게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대상자 중 기초수급자가 아닌 분이 더 많다. 배○○ 대상자는 연세가 90세다. 배롱나무가 아름답게 피고 잔디가 있는 큰 집에 혼자 사신다. 서울 사는 따님이 가끔 내려와 어머니를 살핀다. 우연히 따님이 내려와 있는 날 방문했다. 따님이 무척 고마워했다.

김○○ 대상자는 평생을 혼자 사신 분이다. 91세다. 젊었을 땐 바이올린도 연주하고 스케이트도 수준급이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겼다. 기초수급자로 나라의 혜택을 입고 사신다. 사는 아파트도 수급자만 살 수 있는 깨끗한 공간이다. 그런데 몇 년 동안 에어컨이 고장 나 가동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라의 덕을 입고 사는 주제에 도와 달라고 하기 민망해 무더위를 견디려고 인근 영남대병원 로비에 가서 앉아 있다가 오곤 했단다.

인근 행정기관에 찾아가 사정을 알리니 신속하게 에어컨을 수리해 주었고, 여분의 돈도 지원해 주었다. 대상자는 마냥 고마워한다. 당신들 덕분에 더 오래 살아야겠다고 농담까지 하신다. 나이 들어 혼자 사는 게 마냥 외로운 것만은 아닌 거 같다?

김영필(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