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대구경북이 행정통합을 하면 지역 문제가 일거에 해소될 것처럼 말하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메시아론', 행정통합을 하지 않으면 지역이 한꺼번에 소멸할 것처럼 얘기하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종말론', 그 사이 어디쯤엔가 행정통합의 진실이 있다.
내가 보기에 행정통합은 메시아론이 전하는 '모세의 지팡이'도 아니고 종말론이 예고하는 '휴거의 기적'도 아니다. 행정통합은 장밋빛 미래를 여는 만능 열쇠가 아니다. 그것은 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한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잘 하면 좋고, 못하면 별 볼 일 없는 그런 일이다.
이런 지적을 굳이 하는 까닭은 기대가 지나치다 못해 '행정통합 판타지'가 만들어지고 있는 지역의 현실이 걱정스러워서다. 행정통합은 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하고 나서도 그 목표를 실현하기가 간단치 않은 과정이다. 그래서 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그러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행정통합에 찬성한다. 행정통합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초집중 체제와 싸워 더 많은 재량권과 더 많은 자원을 쟁취하고, 지역 혁신의 동력을 만들자는 취지에 공감한다. 그리고 그 역사적 투쟁에 기꺼이 함께하고 싶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으니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행정통합의 판타지는 과잉이고, 태도는 성급하며, 과정은 부실하기 때문이다.
행정통합은 '사회적 합의→행정적 합의→정치적 합의→법률적 합의'라는 문을 차례로 통과해서 가야 한다. 왜냐하면 광역 행정통합은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며 그래서 아직 절차법도 없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근차근 '관문형'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오류의 가능성을 점검하며 신중하게 가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의사결정 과정을 대충 얼버무리고 달리는 것 같아서 염려스럽다. 행정적 합의를 먼저 해 놓고, 사회적 합의는 건성으로 거친 후, 정치적 합의로 넘어갈 생각인 것 같은데 그건 행정통합의 성공을 위한 올바른 방략(方略)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가 엉성하면 그 후 나타나는 장애물을 돌파하기가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시도민의 합의가 허술하면 지역을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동의를 얻기 힘겨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나 다른 정당의 지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행정통합을 추진할 가장 확실한 힘은 오로지 '대구경북 시도민의 이름'에서 나온다.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의 이름과, 곧 떠날 거라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이름이, 국정 수행 지지율이 바닥인 대통령의 자문기구인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의 이름이 행정통합의 장애물을 돌파할 힘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글쎄다'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합의를 다지지 않은 행정통합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격이다. 특히 경북 북부지역 주민들이 제기하는 질문에 응답하지 않고는 행정통합은 신기루가 될 공산이 크다. 행정통합이라는 공공재의 혜택을 흠뻑 누리는 지역이 있는 반면에 그것을 생산하기 위한 비용만 부담하는 지역이 있다면 누가 그걸 받아들이겠나? 그걸 누가 정의롭다고 하겠나? 행정통합이 성공하려면 그 과정에서 좌절감을 느끼는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경북 북부지역 주민들은 행정통합이, 그동안 추진했던 북부지역 균형 발전 계획을 수포로 돌리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그들의 볼멘 호소는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측은 그것에 대한 '설명 의무'가 있다. 그들의 주장을 '생떼'라고 하거나 '소지역주의'라고 하는 건 전형적인 '희생자 비난론'(a victim-blaming theory)이다. 경북 북부지역 주민들의 문제 제기는 헌법적 권리다. 행정통합을 위하여 누구에게도 일방적 희생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애굽을 나와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가시밭길이다. 역경을 이기고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힘은, 행정통합의 은혜도 그 반대의 고통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것이 대구시장, 경북도지사가 유념해야 할 행정통합의 묵시록(Apokalyps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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