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 칼럼] 이재명, 당 대표 사퇴하라

입력 2024-11-24 10:50:52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일란성쌍생아'처럼 정치 행보가 닮았다. 문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직을 유지한 최초의 대선후보였다.

대선에 떨어지더라도 국회의원은 하겠다는 '양수겸장'의 뜻을 유권자는 알아차리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지 않았다. 대선 후 초선의원 신분으로 돌아간 그는 4년의 임기를 마치고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면서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정치 행보다. 대선 때 의원직을 사퇴하고 사생결단의 '배수진'을 치는 것이 상식이었다는 것을 그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전례를 따르듯 이 대표는 대선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고 2선으로 물러나 정치적 휴지기를 갖는 대신 인천 계양을 재보선에 출마, 국회에 입성하고 내친 김에 당 대표직까지 거머쥐는 질풍노도의 정치 행보를 택했다. 총선 참패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비대위원장으로서 책임지고 물러나지 않고 전당대회 출마로 돌파했다. 정치적 실패에 대해 책임지고 반성하면서 2선 후퇴하는 방식은 이제 김영삼·김대중 등 구시대의 정치문법이 된 셈이다.

이 대표가 물러나지 않고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행사하고 제1야당 대표로서 사법리스크에 대응하는 의도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 YS와 DJ나 다른 정치지도자들에게는 대장동·백현동개발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등의 사법리스크가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국회의원과 당 대표가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구속돼서 재판도 마무리되거나 지금쯤 '슬기롭게' 감방생활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 대표를 겹겹이 보호하고 있던 방탄 갑옷도 이제 수명이 다 됐다. '주문,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다만 2년간 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지난 15일 기소된 지 2년 2개월여 만에 공직선거법 1심 '판결문'을 받아든 이 대표는 망연자실한 듯 재판장을 바라봤다. 2심에서 뒤집거나 벌금 100만원 이하로 형량을 줄이지 못한다면 차기 대선 출마는 고사하고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현실이 눈 앞에 닥친 것이다.

오는 25일 오후 2시 이 대표는 다시 법정에 나가 위증교사 의혹사건에 대한 1심 선고를 받아들어야 한다. 검찰은 징역 3년형을 구형한 바 있다. 다시 유죄선고가 나온다면 그의 운명은 시한부라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거리로 나서 매 주말 장외집회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선동하는 것은 시한부를 선고받은 이 대표의 대선 출마를 위해서는 조기 대선 외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법리스크가 '사법처리' 수순으로 전환됐다는 것을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대표와 야권이다. 그동안의 재판에서 이 대표는 시종일관 범죄를 시인하고 반성하는 태도 대신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정치검찰의 정치 보복이라고 호도하면서 무죄 만을 주장해왔다.

변호사로서 수많은 형사법정에 나선 그가 이번 재판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하는 모습이라고는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야권이다. 국회 입법권을 장악한 제1야당 대표라는 정치 지도자라면 최소한 재판에서 징역형의 유죄 선고를 받은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진솔하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중국 제왕학의 하나인 '후흑학'에서는 영웅호걸은 모두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고 지적한다. '얼굴이 두껍고 속이 숯덩이처럼 시커매야'(후흑) 천하를 다스릴 수 있고 난세의 영웅이 된다는 것이다. 유비와 조조는 물론이거니와 공자와 맹자 등도 나름 후흑(厚黑)의 대가였다. 후흑의 관점에서 이 대표는 우리 시대 최고의 영웅호걸이다.

정치인은 2선으로 물러나 퇴장할 때 아쉬움을 남겨야 한다.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DJ는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갔다가 5년 후 대통령이 되기도 했다. 이제 이 대표가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같은 당 출신 설훈 전 의원이 대표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이 대표는 진작 대표직을 내려놓고 성실하게 재판을 받아야 했다. 당 대표와 국회의원직이 더 이상 그의 방탄 갑옷이 되지 못한다.

유력 대선주자로서 이제라도 용퇴를 선택한다면 재판이 마무리된 후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이 대표는 최소한 당 대표직이라도 사퇴, 민주당을 방탄의 덫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을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