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싸웠지만 패했다. 당을 지휘해 전국 선거를 또 치른다면 또 패할 것이다. 한동훈은 패하도록 운명(運命) 지어졌다는 말이 아니다. '한국 유권자 지형'에서 그의 전략은 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요즘 줄기차게 변화(變化)와 쇄신(刷新)을 외치고 있다. 4·10 총선 당시에도 정부·여당이 쇄신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김건희 여사 사과 요구, 도태우·장예찬 후보 공천 취소 등이 그런 예다. 그에 반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주당 후보들의 온갖 추잡(醜雜)스러운 논란에도 그대로 안고 갔다. 윤리·사법 정의·쇄신 잣대로 보자면 국민의힘이 대승하고, 민주당이 대패했어야 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한쪽은 쇄신 논란으로 내부가 시끄러웠고, 한쪽은 추잡하지만 조용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들(유권자들)은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드러난 이미지, 간결한 구호, 내부 분란 유무로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더구나 지지층이 극명하게 갈라진 '한국 유권자 지형'에서 승리하자면 자기편을 격동(激動)시켜 최대한 많이 투표하도록 만들고, 상대편 지지층은 투표장에 나갈 마음이 안 생기도록 해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한동훈 비대위는 그 반대로 했다. 쇄신하겠다며 자기편을 때렸고 그 결과가 총선 대패였다. 지금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한 대표의 변화와 쇄신 요구도 그때와 비슷한 양상(樣相)이다.
김 여사 관련 논란 중에 현재까지 사법 영역에서 '혐의'로 인정될 만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특검법'으로 계속 여론전을 펼치고, 특검법의 독소조항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2번 행사하면서 국민 여론이 나빠졌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주도한 특검법의 위헌성이나 김 여사의 '사법 혐의 없음'에 대해 적극적으로 여론전을 펼치지 않았다. 오히려 '한동훈 지도부'는 '김 여사 사과가 필요하다' '검찰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며 동조했다.
사람은 터무니없는 말도 세 번 들으면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 심리를 알기에 민주당은 계속 여론전을 펼친다. 그렇게 조금씩 확장된 여론은 일정 임계점(臨界點)에 이르면 '국민 눈높이'가 된다. 한 대표는 이에 대응하는 여론전을 펼치기는커녕 민주당이 만들어낸 여론을 '국민 눈높이'라며 거기에 맞게 쇄신하자고 한다. '김 여사 대외 활동 중단' '대통령실 인적 쇄신' '관련 의혹 해소' 요구 등이 그런 예다.
그런 식으로는 백날 쇄신해도 끝이 없다. 야권이 꼬투리를 잡아 여론전을 펼치면 '국민 눈높이'가 되고, 그러면 또 쇄신해야 하니 말이다. 무한 반복되는 쇄신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넌더리 난 지지층만 떠날 뿐이다. 이 상황이 오죽 마음에 들었으면 조국 대표가 "한동훈 대표 파이팅, 윤 대통령 부부와 결별하라"며 응원하겠나.
한 대표는 여론에 떠밀려 쇄신에 몰두할 게 아니라, 여론을 주도해야 한다. 총구(銃口)를 외부로 돌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재명·조국 대표 재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알박기한 공공기관장 문제, 울산시장 선거 개입, 김정숙 여사의 이상한 송금 의혹, 북한의 러시아 파병 등 논란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저들과 달라야 한다"며 상대편 의혹엔 침묵하고 자기편에 총질하는 것은 '쇄신'이 아니라 '분열·갈등' 조장이며 자멸(自滅)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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