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소비를 넘어선 경험

입력 2024-10-13 13:33:47

유재민 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유재민 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유재민 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인터넷을 통해 미디어 콘텐츠를 직접 제공하는 OTT(Over-The-Top) 플랫폼의 등장은 미디어의 접근성과 소비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며 다양한 측면에서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자체적으로 제작된 오리지널 콘텐츠의 글로벌 흥행은 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한 관련 산업의 성장과 함께 문화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견인하고 있다.

OTT 플랫폼의 성장은 현대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개인주의의 확산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전통적인 집단주의와 조직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며 스트레스와 불안을 느끼는 현대인들은 사회적 관계나 의무, 기대감 등으로부터 벗어나 독립과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필요에 의해 유연하게 연결되지만 언제든 의무감 없이 단절될 자유를 보장 받는 느슨한 관계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도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근거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3주 연속으로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시리즈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작품에 오른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관심이 뜨겁다. 서로 다른 배경과 능력,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이 요리로 경쟁하는 과정을 통해 보이는 다양한 볼거리와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이 흥미를 유발한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유명세를 얻은 '오징어 게임', 밀도 높은 묘사로 국내에서 많은 호평을 받았던 드라마 '돌풍' 역시 적자생존의 경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생존에 대한 불확실성과 경쟁을 통해 극대화된 긴장감은 콘텐츠의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콘텐츠의 소비자들은 관찰자의 시점에서 행위자들을 지켜보며 대리만족과 공감을 얻기도 한다.

개인주의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경쟁하지 않을 권리가 점차 중요해지면서 경쟁 구도를 통해 서사를 이어가는 콘텐츠 역시 열광적으로 소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직접적인 행위는 하지 않지만 좌절감 없는 안전한 거리에서 경쟁을 지켜보며 관찰의 즐거움과 간접 경험의 쾌감을 얻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영리한 제작자는 행위자의 사적 영역을 개방해 접근을 허용하고 관찰자의 호기심과 우월감을 충족시킴으로써 콘텐츠의 지속적인 소비와 흥행을 이끌어낸다.

콘텐츠의 흥행에 있어 초기 반응은 특히 중요하다. 장소와 시간의 제약 없이 더욱 개인화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현대의 콘텐츠 소비 성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여러 OTT 제작사들은 다양한 주제와 장르의 개발뿐 아니라 빠른 전개, 짧고 몰입도 높은 서사, 비선형적인 치밀한 구조, 과감한 소재와 연출,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화려한 시각적 효과 등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보상심리를 단시간 내에 충족시키는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미디어의 소비가 주는 즉각적 보상은 중독성과 의존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제공된 정보의 무분별한 수용에 익숙해지면 단편적이고 수동적인 태도 형성과 사고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콘텐츠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각도에서의 분석과 메타인지를 포함한 비판적 사고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의미 있는 경험이 되도록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