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이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수없이 나왔지만 여전히 지갑은 열리지 않고 있다. 9일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최근 소매 판매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소매판매액지수 증가율은 지난해 동기보다 2.4% 감소했다. '카드 대란(大亂)' 때인 2003년(-2.4%) 이후 최저치다. 4분기에도 소매시장 전망은 어둡다. 대한상공회의소가 500개 소매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경기전망지수를 조사했더니 전망치가 80으로 집계됐다. 지수 100 미만은 부정적 경기 전망이 많다는 뜻이다.
물가는 오르고 수입은 줄어드는데 지출 비용이 계속 늘면서 소비 트렌드도 바뀌었다. 한 민간 연구소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 부를 과시하는 '플렉스',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자는 '욜로' 언급은 줄고, '무지출, 무소비' 관심은 커졌다. 비용, 가격, 할인 등을 꼼꼼히 따지는 가성비(價性比) 위주의 소비 트렌드 때문에 편의점에선 초저가 상품이 점차 인기를 얻고 있다. 한 편의점 집계에 따르면, 5천원 미만 도시락 판매 비중이 올해 30% 선을 넘었고 컵라면·스낵·두부 등 1천원 이하 상품 매출도 전년 대비 27.3% 증가했다. 이런 구두쇠 소비에도 지출은 계속 커진다. 배달, 동영상, 음원, 전자책 등의 구독 서비스 시장 급성장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져서다. 한 번 가입하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른바 '록인(Lock-in) 효과' 탓에 요금을 올려도 구독을 끊지 못한다. 거대 플랫폼을 갖춘 대기업들은 안정적 수익을 거두지만 자영업자들은 갈수록 죽을 맛이다.
올 들어 기업 실적 호조(好調)로 명목임금은 오르고 물가상승률은 둔화하면서 하반기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섣부른 낙관(樂觀)은 금물이다. 정부가 지난 2일 민간 소비의 구조적 취약 부문을 중심으로 내수 진작을 위한 맞춤형 지원에 나선다고 밝혔는데, 시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배추 출하를 늘리고 일회성 소비 촉진 행사를 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갑을 닫은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읽어 내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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