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햇살이 바람을 따르듯

입력 2024-10-03 13:17:31 수정 2024-10-03 17:52:33

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김미옥 수필가
김미옥 수필가

수필에 기대어 삶을 바라본다. 시절마다 사람들의 모습이나 사는 방식은 다르지만 일상의 흐름은 그대로다. 시대의 반짝이는 작가들은 화려한 문체, 놀라운 반전, 심장을 쪼이는 감정이입과 감동을 담아 그들만의 방식으로 문학의 길을 걸어 왔다. 현대 과학기술이 일상에 파고들면서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는 지금, 독자는 머물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

어린 날 혼자 시간이 길어질 때면 다락방을 찾았다. 퀴퀴한 묵은 짐들과 낡은 서적이 빼곡한 그 사이에서 외로움을 내려놓기 위한 일상의 추적이었는지 모른다.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내용의 도서가 가득했지만 다락방을 찾아들었던 그때부터 나는 문자의 세계와 함께 성장했다. 여러 책을 펼쳐가며 같은 글자 찾기, 한 글자씩 맞춰서 좋아하는 단어 맞추기, 책으로 집 짓기, 탑 쌓기, 그림 찾기 등 혼자 놀이에 빠져 있었다. 그 당시 내게 책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외로움을 분산시키는 단순한 놀이 도구였다. 그렇게 다락방에서 지쳐 잠들면 나를 깨운 것은 좁은 창문으로 스며든 햇살이었다.

글쓰기는 시대의 감성과 내용이 그대로 녹아나기 마련이다. 지금 세대에 맞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고 수필의 시대적 영역을 넓히는 것은 햇살이 바람을 따르듯 그렇게 흘러가는 거라 믿고 있다.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 나열되거나 일반 문체를 거스르는 화법이 포함되는 것에 대한 염려는 독자의 몫이다. 수필에 대한 편견이나 사건 사고에 대한 의견 차이 등에 대해 젊은 세대의 감성을 탓할 수만도 없다. 혼자서 낡은 책과 놀며 호기심을 풀던 어린 시절을 지나왔듯 시대의 수필과 함께 독자의 취향도 변하고 있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은 없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조차 난센스가 벌어지는 요즘, 사람 마음도 날씨를 닮아 감동을 자극하는 요소가 천차만별이다. 내면에서 흡족한 글을 찾다보면 여전히 묵은 이야기로 감싼 글 속에서 헤매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나무 한 그루에 글을 얹어 상상해 보라. 바람은 같은 강도로 나뭇가지를 흔드는 법이 없고 쏟아지는 햇살 역시 똑같지 않다. 그만큼 독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곁을 스쳐 간다. 햇빛 아래 웅크린 나뭇잎도 바람이 불면 무더위를 털며 고개를 드는 법. 글쓰기가 부족하더라도 조바심내거나 기피하는 마음보다 받아들이면서 성장하는 쪽을 택하고 싶다.

햇살이 바람을 따르듯 삶은 시간을 타고 이어진다. 어렸던 그 때의 상상과 새롭게 시도하던 놀이의 형태가 멈춰진 지금, 생각을 굴린다. 시도해야 한다. 내 삶의 고운 속살 한 덩어리를 온갖 형태로 빚어 진정한 의미가 전달될 수 있도록 계속 도전해야 한다. 시절 따라 새로운 이야기가 수필이 돼 쌓이면 또 다른 빛이 일상의 결 따라 흐를 것이다. 부디 나의 묵은 감성이 다가올 미래를 매듭지어 틀에 가두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