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까지
갤러리 신라 대구 전시장이 구멍 뻥뻥 뚫린 신문을 들고 뭔가를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각자 앞에 놓인 신문의 텍스트를 읽고, 면도칼로 그 부분을 오려내길 반복했다.
이 퍼포먼스를 이끈 이는 한국의 1세대 전위예술가로 꼽히는 성능경(80) 작가. 그는 1970년대 초 실험미술 그룹인 S.T(Space&Time)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S.T전을 비롯해 대구현대미술제, 서울비엔날레, 앙데팡당, 에꼴 드 서울 등 당대 주요 전시에 참여해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와 사진, 설치 작업들을 선보여왔다.
이날 선보인 '신문 읽기'는 그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퍼포먼스다. 1976년 서울화랑 '4인의 이벤트' 전시에서 처음 발표한 '신문 읽기'는 당시 유신 체제에 저항하는 움직임이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성 작가는 "당시 검열되고 왜곡되며 변형된 신문에 대한 젊은 예술가의 저항이었다"며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모깃소리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때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이 시대에도 신문 읽기 퍼포먼스는 통한다. 퍼포먼스가 진행될수록 매체로서의 기능을 잃고 너덜너덜해진 신문은 우리가 당연하게 흡수하는 정보에 대한 의심, 종이신문이 사라져가는 21세기 미디어의 변화 등 다양한 사유를 하게 만든다.
이처럼 그의 작업 세계는 항상 상업미술과는 동떨어진 길에 서있었다. 일상과 예술 간의 경계를 허물고 탈물질화를 지향하는 한국적 개념미술을 개척해왔다.
헌데 미술은 시, 소설, 영화, 음악 등과 달리 불가피하게 물질을 다루는 분야다. 물질성 때문에 재산 가치로 평가되는 것이 미술인데, 그 물질성을 제거하는 것이 그의 개념미술 작업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까.
"1970~80년대를 거치며 소외되는 느낌이 있었죠. 미술계로부터 '업신여김'이 아니라 '없음여김'을 당했달까요. 결국 1990년대 초반에 병을 얻고 드러누웠습니다. 미술 안해도 좋으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등산 등 운동으로 몸을 단련해왔습니다."
그 때 그는 사실 미술을 포기했었다. 한 작품 끝내고 나면 다음 작품을 고민하며 머리가 터질 듯했던 때였다. 미술을 포기하고 나니 마음 속 꽉 막힌 돌멩이가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몸의 병을 만든 것이 결국 마음이었던 것.
그는 "오히려 그 때부터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내가 뭐든지 하는대로 예술이 됐다. 그 전에는 어떻게 일상을 예술화할 지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내가 선택하면 예술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일상과 예술의 융합, 수행성이 돋보이는 작업을 이어왔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작업한, 그의 또 다른 대표 작품인 '그날그날영어'는 일상을 반복하며 지속하는 수행성과 시간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신문에 연재되는 생활영어코너를 오려 붙이고 공부한 흔적들을 통해 일상을 예술로 재맥락화하는 그만의 개념미술을 보여준다.
그는 "거창한 그림을 그리는 것만 예술이 아니라, 하루하루 뭔가를 매일 수행하는 것도 예술이 된다"며 "나는 두잉(doing)하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독자적인 그의 작품 세계가 펼쳐진 이번 개인전 '어제, 이제, 하제'는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점검하고 새로운 작업의 전개 방향을 찾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하제'는 내일의 순우리말인 '할제'의 경상도 사투리로, 대구 전시라는 데 의미를 둔 작가가 직접 정한 제목이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053-422-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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