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의 장소의 사색] 시모노세키의 달

입력 2026-07-28 16: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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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노세키 아카마 신궁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
시모노세키 아카마 신궁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

한국 근대소설의 선구자인 염상섭은 「만세전(萬歲前)」이라는 중편소설에서 100년 전의 우리 사회를 묘지로 묘사했다. 이 소설의 첫 번째 제목인 「묘지」였다. 동경유학생인 부잣집 도련님 이인화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동경에서 서울로 귀환한다. 시모노세키(下関)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들어온다. 그 도정에서 마주친 이 땅의 현실은 아주 암담하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은 어때요?" "요보 말씀이에요? 젊은 놈들은 그래도 제법들이지마는, 촌에 들어가면 대만의 생번(生蕃)보다는 낫다면 나을까. 인제 가서 보슈‥‥‥ 하하하."

'대만의 생번'이란 말에, 그 욕탕 속에 들어앉았던 사람들이, 나만 빼놓고는 모두 킥킥 웃었다. 나는 가만히 앉았다가, 무심코 입술을 악물고 쳐다보았으나, 더운 김에 가려서, 궐자들에게는 분명히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말이지, 나는 그 소위 우국지사는 아니다. 자기가 망국 민족의 일 분자라는 사실은 자기도 간혹은 명료히 의식하는 바요, 따라서 고통을 감하는 때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때껏 망국 민족의 일 분자가 된 지 벌써 7년 동안이나 되는 오늘날까지는, 사실 무관심으로 지냈고, 또 사위가 그러하게, 나에게는 관대하게 내버려 두었었다. [염상섭, 「만세전」]

일본 내해 초입 칸몬해협, 시모노세키에서 바라본 키타큐슈
일본 내해 초입 칸몬해협, 시모노세키에서 바라본 키타큐슈

옛 말투, 옛 단어가 간간히 섞여 있어서 읽기가 쉽지는 않지만 관부연락선의 욕탕에서 일본인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시쳇말로 '이러려고 지식인이 되었나하는 자괴감'을 느끼는 장면이다. 일본인들이 조선에 가서 '요보'(조선인 노동자들)를 모집해서 인신매매로 돈 벌 궁리를 한다는 것, 그리고 조선 사람의 수준이 대만의 '생번(야만인)'과 비슷하다는 말을 듣고 비참한 심정이 된다는 내용이다. 방관자로 살아온 한 식민지 지식인이 충격적으로 목격한 이 '조국의 현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이 소설은 안팎으로 썩을 대로 썩은 조선의 현실, 특히 봉건적 의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도 이전투구를 벌이는 조선의 기득권층에 대한 예리한 비판도 도처에서 하고 있다. 다만, 주인공 이인화가 더 이상의 미래를 보지 못하고 "공동묘지다! 구더기가 우글우글하는 공동묘지다! 에잇! 뒈져라 움도 싹도 없어져 버려라! 망할 대로 망해 버려라"라고 자포자기의 심정을 토로하는 것은 당시 식민지 지식인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좀 아쉽다. 그런 시각형 지식인이었기에(눈에 보이는 것에만 주목하는) '세상의 비참'을 그나마 꼼꼼하게 그려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키타큐슈 모지코 근대유적
키타큐슈 모지코 근대유적

세상은 많이 변했다. 「만세전」의 주인공 이인화가 비참한 심정으로 관부연락선을 타던 시모노세키는 요즘 어디를 가나 젊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개인의 삶만 두고 보면 한일관계는 지금 완연히 역전되어 있다.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훨씬 잘 산다. '요보' 장사를 하기 위해서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건너가던 시절과는 아주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요보'들이 아니라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서 가까운 일본 땅을 찾는 한국인 단체, 개인 관광객들로 시모노세키 항은 연일 붐빈다. 특히 가라토 수산시장 같은 곳은 금,토,일요일 아침 일찍 생선초밥을 사 먹기 위해 관광객들이 줄을 선다. 인기 있는 상점 앞에는 줄이 꽤 길다. 간혹 한국말로 메뉴를 적어놓은 상점도 보이지만 대체로 일본어로 초밥을 주문해야 하는 시스템이라 일본어에 미숙한 한국인 관광객들은 손짓으로 먹고 싶은 초밥을 가리켜서 주문한다.

시모노세키는 우리 1기 베이비부머들(1953~1963년 출생자들)에게는 특별히 트라우마가 있는 지명이다. 관부연락선과 한 짝을 이루며 '근대'라는 개념에 접속되어 새로운 문물의 수입이 이루어지는 관문인 동시에 식민제국의 징용이나 징병(강제동원)이나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가난한 백성들의 이산(離散)의 현장으로 각인된 단어가 바로 시모노세키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뇌리에는 '시모노세키 = 치욕의 관문'의 이미지가 아주 강하게 박혀 있다. 청일전쟁 후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우월한 간섭권을 획득하게 되는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 장소도 바로 이곳이고 조선시대 일본통신사들의 최초로 일본 본토에 상륙한 곳도 이곳 시모노세키다.

키타큐슈시 고쿠라 성 내부
키타큐슈시 고쿠라 성 내부

지금도 조선통신사선(船)에서 사용했던 커다란 닻이 시모노세키 바닷가에 전시되고 있다. 우리 세대가 학교에서 배운 근대문학사나 근대문화사에서는 시모노세키라는 단어를 좋든 싫든 수시로 마주쳐야 했다. 근대문화의 유입 경로에 시모노세키가 빠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식민지 시대의 작가들 태반이 일본유학생들이었으므로 그들이 쓴 작품이나 그들의 젊은 시절 이야기에는 반드시 시모노세키가 등장했다. 그들의 이동 경로에 시모노세키가 필수 경과지였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는 '과거에 묻힌 도시' 시모노세키의 코드와 맥락이다.

야마구치현의 시모노세키는 일본 혼슈(본 섬)의 최남서쪽에 위치한 도시다. 일본 내해(內海)의 시작 칸몬해협을 사이에 두고 후쿠오카현의 키타큐슈와 마주 보고 있다. 야마구치현의 최대도시 시모노세키와 공업도시 키타큐슈(옛 고쿠라)는 칸몬대교로 한 도시처럼 연결되어 있다. 두 도시는 도쿄나 오사카 같은 화려한 현대도시도, 교토나 나라 같은 고색 찬란한 유적이 모여 있는 고도(古都)도 아니다. 그저 일본인들의 평균치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평범한 도시들이다. 그런데 나 같이 생활의 오래된 향기를 좋아하는 고물적(古物的) 인간에게는 그런 점이 오히려 더 좋다. 수백 년 동안 한 곳에서 주택가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도 있소(가옥들은 물론 현대식으로 개축되어 있다. 주거지 이름이 '사무라이촌'이다), 모지코라는 근대 유산들을 모아놓은 항구도 있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칸몬대교도 있고(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해저터널도 있다), 가성비 좋은 초밥을 파는 가라토 시장도 있고, 시원하게 잘 관리된 아키요시 동굴도 있고, 그리고 또 내가 검도인이기 때문에 덧붙이는 것인데, 일본의 검호(劍豪) 미야모토 무사시가 숙적 사사키 코지로와 최후의 결투를 벌인 무인도 간류지마도 있는 것이 좋다.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장소 내부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장소 내부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고쿠라는 2차대전 중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
에 두 번째 원폭이 투하될 때 표적 도시였다고 한다. 그날 고쿠라 상공의 날씨가 좋지 않아 제2표적이었던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었다는 것인데, 비밀이 해제된 미국방성 문서에 의하면 일본이 항복하지 않으면 제3의 원폭이 고쿠라나 니가타에 또 투하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조선통신사 배에 사용했던 닻. 시모노세키 아카마 신궁 앞에 보존되어 있다.
조선통신사 배에 사용했던 닻. 시모노세키 아카마 신궁 앞에 보존되어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쿠라성 앞에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가 마쓰모토 세이초(松本 清張, 1909~1992)의 문학기념관이 있는 것도 좋았다. 세이초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인쇄소 직원을 거쳐 아사히신문의 기자로 활약하다가 나이 사십이 넘어 소설가로 본격 입신한다. 사건 자체보다 사건의 사회적 동기의 묘사에 집중하는 세이초의 사회파 추리소설은 일본에 추리소설 붐을 일으킨다. 세이초는 추리소설을 통해 '인간'을 그리는 것에 치중했다. 전대미문의 다작을 보여준 세이초의 창작열은 지금도 불가사의로 남아있다. 거의 쉬지 않고 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기념관 안에는 생가(소설가가 된 후의 자택)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데 국내의 여러 문학관들을 다녀 봐도 그런 식으로 내부를 구성한 곳은 아직 보지 못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기념관 내부를 사진으로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이번에 게시하는 사진은 십년 전에 시모노세키를 들렀을 때 찍은 것들이다. 조만간 부관페리를 타고 시모노세키로 입항, 교토 쪽으로 신간센을 타고 마이즈루(舞鶴)를 한 번 다녀오면서 좋은 사진도 좀 찍어올 생각이다.

소설가·대구교육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