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월광태자를 그리며

입력 2024-09-09 14:01:29 수정 2024-09-09 15:34:05

최병호 전 경북도 혁신법무담당관

최병호 전 경북도 혁신법무담당관
최병호 전 경북도 혁신법무담당관

지금으로부터 1천500여 년 전인 562년(진흥왕 23) 9월, 대가야국은 신라에 의해 멸망되었다. 이로써 대가야국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 역사의 중심에는 월광태자가 있었다.

대가야국은 42년 시조 뇌질주일(이진아시의 별칭) 또는 대로(가락국의 시조 수로왕의 둘째 동생)가 지금의 고령군 일대를 중심으로 건국하였다. 전성기에는 경남 서남부와 호남 동부지역을 아우르는 영역 국가로 발전했다. 철 생산과 제련 기술을 바탕으로 철의 왕국으로 성장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에 버금가는 고대국가로 발전하였다. 시조 이진아시왕부터 16대 도설지왕(월광태자와 동일인이라는 견해도 있음)에 이르기까지 520년간 존속하였다.

고령군에는 고분군, 산성, 성터, 그리고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창제한 정정골 등 문화유적이 널려 있어 이름 없는 풀 한 포기, 나뒹구는 돌 하나에도 대가야 500여 년 역사의 향기와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대가야의 무덤인 지산동 고분군은 5세기 초에서 6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706기의 고분이 있다. 고분에서는 금동관, 토기, 갑옷과 투구, 칼 등 유물이 무더기로 출토됨으로써 베일에 싸여 있던 대가야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것이 대가야의 실체이고 살아 있는 역사이다. 또한 가야고분군이 2023년 9월 24일 우리나라에서 16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월광태자는 가야산 신 정견모주의 10세손으로 대가야국의 마지막 왕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제9대 이뇌왕이고 어머니는 신라 이찬 비지배의 딸이다. 그는 550년 신라에 망명하여 신라의 장군으로 생활하다가 대가야국 멸망 직전 대가야인들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한 신라의 모략에 따라 대가야국의 왕이 되었다. 이는 당시의 암울한 시대 상황을 말해 준다.

그는 대가야국이 멸망하자 망국의 한을 품고 가야산 아래인 경남 합천군 야로에 월광사를 짓고 여생을 보냈다. 현재 월광사 사지에는 통일신라시대 동·서 3층석탑만이 덩그러니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그의 나라 잃은 설움, 국민을 지키지 못한 슬픔은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4국 시대를 넘어 강한 대국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의 잃어버린 역사, 잃어버린 꿈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적·시대적 과제이다.

오늘날 나의 고향, 대가야의 고도 고령군은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 고령군은 그 옛날 찬란했던 대가야국의 부활을 꿈꾸며 명실공히 역사문화도시, 관광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하여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대가야국의 후예로서 이 땅을 지키며 살리라고 다짐하면서 시 '월광태자를 그리며'를 허공에 띄운다.

"석양이 기우니 밤이 깊고 세상도 잠이 드는데 짝 잃은 산새들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산천도 따라 울고 바람에 우는 풍경은 갈 곳 없는 길손 마음 흔드네/ 님이 흘린 눈물은 강물 되어 가야천에 흘렀으라 님이 뱉은 한숨은 바람 되어 주산성에 불었으라 님이 삼킨 설움은 원한 되어 저 하늘에 물들었으라/ 한 서린 속세 떠나 월광신이 되신 님이시여 천년이고 만년이고 이 땅을 지켜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