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그 얘기 밖에 안해요"…교실 강타한 '딥페이크'

입력 2024-08-27 17:17:57 수정 2024-08-27 21:43:10

"'딥페이크' 이용 음란물 제작 만연해 있다" 주장
초·중·고 등 학교 중심 관련 소문 파다, 불안감 커져
텔레그램 특성 탓 수사 한계..."근본 해결책 필요해"

텔레그램에서 대구 중·고교별로
텔레그램에서 대구 중·고교별로 '딥페이크' 영상 공유 방이 개설돼있는 모습.엑스(X·옛 트위터) 캡처

최근 텔레그램에서 여성의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한 허위 영상물이 생성·유포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단체 대화방이 대규모로 발견되면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교육청과 경찰 등이 성범죄 대응 및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실질적인 해결책 마련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 중구의 한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다니는 A(18)양은 최근 학교에 떠도는 '딥페이크' 가해자 명단에서 아는 사람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곧바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진을 모두 삭제했지만 두려움은 채 가시질 않는다.

그는 "요즘 학교에 가면 친구들 모두 '딥페이크'에 대한 걱정들로 가득 차 있다. 실제로 건너서 아는 친구가 이미 피해를 당했다는 소식이 무성하다"며 "이제 곧 수시 원서를 작성해야 하는 3학년인데 학업에도 악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대구 남구의 한 남자 고등학교에 다니는 B(17) 군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는 "어제부터 갑작스레 언론에 관련 내용이 쏟아졌지만 이미 교실에서는 몇 달 전부터 유행하던 이야깃거리"라며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해도 이미 관련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딥페이크' 영상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애들도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딥페이크' 영상에 대한 피해는 고등학교뿐 아니라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군대 등에도 만연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텔레그램과 엑스(X·옛 트위터)에는 이른바 '겹지인방'이라는 검색어를 통해 가해자들이 일부 여성들의 정보를 공유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는 것.

대구 서구의 한 중학교에서는 C양이 '딥페이크' 영상으로 피해를 입었고, 이를 같은 학교 친구가 만들었다는 소문이 학교 전체에 파다하다. 대구지역 20여개 학교가 '딥페이크 영상 피해 학교'로 구분된 리스트가 정보출처를 알 수 없는 채로 온라인에서 떠돌고 있기도 하다.

다만 대구교육청과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현재까지 '딥페이크' 영상과 관련해 신고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딥페이크' 영상에 대해 불안감이 고조되자 교육청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은 잇따라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대구교육청은 27일 모든 학교 누리집에 디지털 성범죄 사례, 법률 위반 시 적용되는 처벌 규정, 피해 발생 시 행동 요령 등을 담은 가정통신문을 게시하고 학교와 가정에서 디지털 성범죄 예방 및 주의를 당부했다.

문제는 경찰에 신고를 하더라도 외국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 특성 탓에 수사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텔레그램의 경우 수사기관이 신고나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하더라도 손쉽게 채널에 업로드된 영상물과 활동 내용도 삭제할 수 있어 신원 특정에 대한 어려움이 크다. 이에 중·고교 여학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올린 사진들을 삭제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해결책을 찾고 있다.

전문가들은 '딥페이크' 영상 문제를 단순히 예방과 주의 차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심각한 인권 침해 문제로 여기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더불어 여성가족부에서 운영 중인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 피해자 구제 기관의 역할과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한우 영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소위 '지인 능욕' 영상을 만드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던 일"이라며 "관련 처벌을 강화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수사력을 키우는 한편, 초등학교에서부터 스마트폰 사용 등에 대한 디지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