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병은 아트리움모리 큐레이터
손끝에 항상 수채물감 때가 끼어있던 고등학교 3학년 미대 준비 입시생 시절, 다니던 입시미술 학원에서 그림을 가장 못 그리는 학생이었던 나는 값비싼 학원비의 가치를 증명하듯 기어코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더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고 입학할 수 있었던 미술대학의 실기 수업 시간에는 부족한 실력에 막막하기만 해 도망치기 바빴다.
하지만 작품을 창작하는 시간과는 달리, 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던 미술사 수업들을 찾아들을 때부터였을까. 모호하게 아른거리다가도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하는 미술작품의 의미들을 하나의 담론으로 붙잡아 시각화하는 전시기획자를 꿈꾸게 된 것은 나에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전시기획자, 큐레이터, 학예사, 예술감독, 갤러리스트…. 기획자는 다양한 명칭으로 미술계의 이곳저곳에 분포한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때 대구의 가장 활성화된 화랑 골목이었던 봉산문화길의 작은 갤러리에서 작품 세일즈를 담당하던 갤러리스트로 머물렀다. 이후 세일즈를 넘어 더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미술이론 전공 대학원에 진학하며 비영리 문화예술기획팀 아트만의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해, 작가들이 먹고 자며 생활하는 레지던시 공간의 입주 큐레이터로, 지역 전시관의 문화예술교육사로 활동하던 시간들을 거쳐 현재 성주에 위치한 전시 공간 '아트리움 모리'와 '아트스페이스 울림'의 큐레이터로 작가와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모두 다른 환경과 역사를 가진 다양한 전시공간에서 그곳의 의미를 담아내는 전시를 기획해 보고 싶다. 1만여 명의 관객이 찾아오는 전시를 만들어보고 싶다. 한 번도 전시를 본 적 없는 사람을 전시장에 끌어들이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관객이 전시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들의 세계를 오역 없이 전달하는 기획자이고 싶다. 이들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미술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 개인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해가 갈수록 더해지는 고민들을 마주하며 기획자의 역할을 다시금 상기한다. 7월부터 12월. 주어진 26번의 매일춘추 칼럼 게재 기간 동안 담고 싶은 지역 예술계의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기획자를 존재하게 하는 힘, 지역의 전시회와 전시 공간, 작가와 작품 등 지역 미술의 현재를 이끌어가는 다방면의 이야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연말에 이르기까지 전시장이 아닌 지면을 배경으로 작가와 전시, 작품과 대중을 연결하는 이가 되고자 하는 나의 꿈을 펼쳐내고, 그것으로 나의 세상인 미술이 존재하고 살아남는 방식이 누군가의 스쳐가는 눈길에 잠깐이나마 가닿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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