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칼럼] 정자정야(政者正也), 무신불립(無信不立)

입력 2025-06-22 13:25:39 수정 2025-06-22 17:52:43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도 2주가 넘어간다. 이 대통령은 여전히 윤석열 정부의 장관들과 국무회의를 하면서 회의 공개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입으론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며 투명한 국정운영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은 전 정부 장관들의 불편한 모습을 국민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아 이리 굴리고 저리 돌리며 가지고 노는 것 같은 상황이 꽤나 즐거운가 보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두고 국회가 또다시 난장판보다 못한 모습을 보인다. 도덕성과 전문성, 가치관과 능력을 모두 검증한다는 것은 교과서적 얘기고, 늘 그랬던 것처럼 편을 갈라 한쪽은 공격하고 다른 쪽은 보호하기에 여념이 없다.

자기편을 보호하는 것도 좋은데, 어쩌면 여야가 한결같이 불과 몇 년 전 자신들이 하던 얘기를 정반대로 하는지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럴 때면 꼭 하는 말이 인사청문회법 개정이다. 문재인 정부 때 하려다가 대선에 지고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발로 차버린 그 개정안 말이다. 하긴 대표 선출을 위한 경쟁에서는 같은 당 후보 간에도 막말이 오가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한덕수 총리 인사청문회에서는 1천여 건이 넘는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는 다 제출하지 않았다고 청문회 자체를 거부했던 민주당이 이번엔 인터넷의 정부24를 통해 누구나 발급받을 수 있는 출입국사실증명서 조차 제출을 거부하는 후보자를 옹호하는데 여념이 없다. 후원자나 주변 사람들과의 수상한 돈거래나 고등학생 자녀의 홍콩대학에서 인턴을 했다는 해명도 믿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한번 시작한 거짓말을 덮기 위해 더 많은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처럼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각 부처 업무보고를 받으며 호통치는 모습도 어쩌면 그렇게 6·25 때 남침해 온 인민군보다 완장 찬 부역자들이 더 밉상이던 것과 닮았는지 기가 막힐 정도다.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 때의 모습은 가관이다. 자신들은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를 바꾸기 위해 불법을 저질러 놓고 윤석열 정부가 임기 만료된 공영방송 이사 교체를 시도한 것을 두고는 방송장악이란다. 이 정도면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닌가.

국민의힘은 더 가관이다. 당내 세력 다툼에 빠져 탄핵으로 가뜩이나 불리한 대선을 사실상 포기한 것만으로도 역사의 죄인이 됐는데, 반성은 커녕 이젠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 되겠다고 서로 다툰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자각하고 깊이 반성하는 단 한 마디가 없는 이 정당을 정상적인 '보수' 정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정계를 은퇴한다고 하와이로 떠난 사람은 단 한 순간도 정치를 놓은 적이 없다. 그럴 것이면 뭐하러 정계 은퇴를 입에 담았는가. 초선 김용태 의원을 비대위원장에 앉혀 놓으면 국민이 '아, 이 정당이 정신을 차리려나 보다'라고 생각할 것 같은가. 혁신하자는 말은 콧등으로 흘려보내면서 개인과 계파 이익에만 몰두하는 국민의힘은 보수 유권자들이 잡아 놓은 고기로 보이나보다.

수도권과 중원 진출을 위해 환골탈태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또다시 영남권 친윤계 원내대표를 뽑아 놓고 혁신할 테니 믿어 달란다. 그 원내대표가 임명한 원내 수석들은 하나같이 계엄과 탄핵 정국, 그리고 이어진 대선 패배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다. 도대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정당을 계속 지지해야 하는지 국민은 회의가 크다.

"교수님, 전 이번 선거에 평생 처음 투표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표를 줄 곳이 없더라구요." 몇일 전 만난 아끼는 제자 A 박사의 말이다. 지인 B씨는 정치인들 얼굴이나 서로 싸우는 말만 들어도 부아가 치밀고 속에서 열불이 나서 아예 TV를 보지 않은 지 오래됐단다. 하긴 나도 연구실에 들어서면 틀어 놓던 라디오의 주파수를 클래식 FM으로 바꾸었다. 고전음악이라도 들어야 보기 싫고 듣기 싫은 정치 뉴스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민이라도 가야 하나 생각 중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이민이라도' 라니, 어렸을 때부터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며 평생을 살아온 조국을 떠나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4대 의무를 하늘처럼 생각하고 꼬박 3년의 국방의 의무를 다하면서 평생을 '시민'이 아니라 '국민'으로 살아온 사람들마저 정치권의 막말과 내로남불을 보다 못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언제까지 이에 신물이 날 정도의 혐오 정치를 계속할 것인가. 정자정야(政者正也)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2,500년 전 공자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