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나는 사실 정리에 서툰 사람이다. 치우는 것과 정리하는 것은 나에게 늘 어려운 일이다. 쌓인 옷더미는 내 일주일의 '전리품'처럼 여겨졌고, 지우지 않은 메모와 일정은 마치 '혹시'를 위한 보험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견딜 수 없는 대청소 욕구가 솟아오른다. 삶의 먼지를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집 안 구석구석을 훑으며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나는 청소가 주는 상쾌함을 조금씩 알게 됐다.
이 정리의 경험은 의외로 예술의 창작 과정과 닮아 있다. 예술가들은 수많은 스케치와 아이디어 속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연극 무대에서 소품을 하나 빼거나, 클래식 음악 연주자의 카덴차를 하나 덜어내는 일은 단순한 '삭제'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집중'을 위한 선택이다. 정리란, 결국 여백을 만드는 일이며, 그 여백 속에서 진짜 본질이 드러난다.
얼마 전, 같은 날 여러 지역 공연장에서 뛰어난 무대들이 동시에 펼쳐졌다. 공연계 종사자들은 관객들이 나누어질까 염려하며 무대를 올랐고, 관객들은 '어디로 갈지' 고민하며 행복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날 우리가 경험한 공연은 하나였다. 풍요로운 자원이 많다고 해서 그 기쁨이 무한히 확장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 선택지와 자원 속에서, 결국 '정리된 선택'만이 진정한 기쁨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기쁨은 결국 선택과 제한 속에서 얻어진다.
이 아이러니 속에서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가 진정 누리는 기쁨은 '풍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돈된 삶' 안에 있다는 것을. 잠깐 외국에서의 삶을 경험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복잡한 인간관계나 무한한 선택이 아니라, 눈앞에서 미소 지으며 인사할 수 있는 한 명, 단촐한 냉장고 재료로 해결하는 한 끼가 더 풍요롭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와 무분별한 문화 소비로 쉽게 정신적 피로를 겪는다. 나 역시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와 문화적 트렌드를 따라잡으려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한다. 하지만 정작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서 비워져 정리되지 않은 마음은 공허함을 키우고, 또 끝없이 그 공허함을 채우려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 산만해지고,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상황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정리는 단순한 물리적 기술이 아닌가 보다. 그것은 우리가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본질을 찾기 위한 '예술적' 과정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울지 고민하는 그 순간, 그렇게 우리는 비워 냄으로써, 마침내 삶을 다시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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