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취재본부 이민호 기자
21대 국회가 5월 임시국회로 막을 내린다. 22대 국회가 열리기까지 한 달, 국회 내부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적어도 국회 본연의 역할인 입법과 법안 심사 기능에서만큼은 말이다.
3년 전 국회는 '상시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며 국회법을 개정해 상임위원회는 매달 2차례, 법률안 심사 법안소위는 매달 3차례 이상 열도록 했으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4월은 여야가 사활을 걸고 총선에 임했으니 국회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5월 임시회를 열기로 했으니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3월부터 5월 21일까지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은 2건에 불과하다. 국회 본청은 지난 2일 본회의, 여야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 평일 오전 회의 때를 제외하고는 대개 고요하다.
국회에 계류된 국정 과제나 민생 법안들이 몇백 건 있다는 사실들이, 국회에 상주하고 있으나 취재할 만한 것을 미처 찾지 못한 기자들의 땟거리 기사들에서 언급될 뿐, 국회 안에서 절박하게 논의되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나마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통과시킬 수 있는 법률안들은 상당수가 28일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우르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한 달간 법안 논의는 하지 않고 국회 문을 잠가 놓다가 의원들이 입법 성과를 남기기 위해 법안을 몰아서 처리하는 것이다. 이를 '땡처리 법안'이라 한다. '땡처리'가 진행되는 가운데 정작 이 시점에서 시급히 논해야 할 법안들은 논의되지 못하고 22대 국회를 기약해야 할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5월은 국회의 주역들이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미뤄둔 해외 일정도 다녀오고 휴식을 취해야 할 시점이기는 하다. 또 총선에서 의원 배지를 잃은 의원과 그를 보좌하는 보좌진은 재취업 활동에 나서 국회를 돌볼 상황이 안 된다는 '현실론'도 감안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국회에 상주하는 이들이 마주하는 이 고요함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국회 취재를 시작하면 종종 들춰 보는 책이 있다. 2004년부터 진보정당 보좌진으로 일한 박선민 전 보좌관의 '국회라는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책이다. 그는 제18대 국회 당시 노숙인 지원 근거를 담은 법률을 만든 이야기를 하면서 "'입법은 무생물의 규칙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절박한 삶의 문제를 다루는 일'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저 대리자일 뿐, 입법권은 주권자가 위임한 권한이며 이 권한을 잘 사용하는 게 정치를 잘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남의 절박한 삶을 다루는 게 법을 만드는 일이니, 대리자가 권한을 잘 사용하는 것도 엄숙한 일이다. 우리는 5월을 보내고, 새로운 대리자가 나타나 서둘러 새 법안을 만들고 정치를 잘 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국회의 침묵은 절박한 삶의 문제를 논하는 일 앞에서 우리의 대리자들이 눈과 귀를 닫아 버린 결과가 아닐까?
고작 한두 달 국회가 일하지 않은 것에 너무 호들갑 떠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 달 두 달 국회가 미뤄 오다가 한 해 두 해가 넘어도 처리되지 못하는 무수한 법안이 있다. 그 법안들은 '누군가의 절박한 삶의 문제'를 다루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호들갑이라고 해도 괜찮다. 그저 22대 국회의 새로운 대리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침묵하는 국회는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이번엔 국회의원 잘 뽑았네" 한번 말해 봤으면, 그런 기사 한번 써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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