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경 교수의 수도원 탐방기]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Melk Abbey)

입력 2024-04-24 16:01:17 수정 2024-04-24 19:03:44

“1천년 간직한 고문헌, 묻힌 것이 아니라 역사를 남겼다”
움베르트 에코 소설 등장…검열 받은 후 읽기 적합한 책만 독서 가능
맘껏 읽을 수 없다면 그냥 도서 보관소일 뿐

멜크수도원은 멜크 산 중턱에 둘레 320m, 높이 65m의 이 바로크 건축의 걸작이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다.
멜크수도원은 멜크 산 중턱에 둘레 320m, 높이 65m의 이 바로크 건축의 걸작이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다.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로 잘 알려진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지식은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진리가 되고, 어떤 지식은 거짓이 된다'. 인류의 문명을 지탱해 온 지식과 진리도 권력에 의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세 수도원은 하늘의 진리를 찾고, 책을 통해 지식을 추구한 학문의 훈련장이었다. 그것은 중세 수도원 부속 학교와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이 잘 대변하고 있다.

◆소설 〈장미의 이름〉에 등장

멜크 수도원(Melk Abbey)은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한다. 소설의 주 무대가 멜크 수도원의 도서관이다. 주인공이 수사 의뢰를 받은 살인 사건은 놀랍게도 수도원의 책과 관련이 있다. 수도원 도서관에는 '웃음이 금지'되어 있고, 수도승들은 철저한 검열을 받은 후에, 그들이 읽기에 적합한 책만을 읽을 수 있다.

〈장미의 이름〉을 읽으면서 중세 수도원 도서관은 지식의 저장소가 아니라 지식이 박제된 전시장 역할을 했음을 느꼈었다. 아무리 진기한 문서가 있고, 필사본이 쌓여 있어도 그것을 마음대로 읽고, 해석할 수 없다면 도서관은 그냥 도서 보관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도서관은 지식의 물을 흐르게 하는 곳이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어지듯이 지식도 받아들여지고 해석되지 않으면 썩기 마련이다.

필자는 멜크 수도원에 발을 들이며, 움베르트 에코가 자신의 첫 소설에서 말하고자 신학적, 철학적, 해석학적 질문을 다시 생각했다. 멜크 수도원은 유럽의 젖줄 도나우 강과 작은 멜크 강이 합류하는 지점, 멜크 산의 절벽 위 높은 곳에 있다.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수도원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은 형용하기 어렵다.

멜크 수도원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바로크 건축물이자 바로크 양식의 최고 걸작품이다. 멜크 산 중턱에 둘레 320m, 높이 65m의 이 바로크 건축의 걸작이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다. 수도원에 들어서자 멜크 구시가지는 물론이고 도나우강과 멜크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멜크수도원 교회는 황금빛으로 찬란하다.
멜크수도원 교회는 황금빛으로 찬란하다.

◆황금빛으로 찬란한 교회당

멜크 수도원은 바벤베르크 왕조 때 레오폴드(Leopold) 가문이 멜크 지역을 차지하며 시작되었다. 레오폴드 2세는 1089년 3월 21일 람바흐(Lambach) 지역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승을 초대했다. 이 후 레오폴드 3세가 수도승들의 생계를 위해 멜크 지역의 토지와 멜크의 바벤베르크 성의 소유권을 수도원에 이전함으로 본격적으로 수도원이 건립되었다. 멜크 수도원의 자리는 1000여년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왕족들과 종교계 인사들이 드나들던 장소였다.

수도원 교회당 앞에 서면 하늘 향해 높이 솟는 두 개의 타워가 인상적이다. 멜크의 첫 인상은 유럽 다른 수도원과 확연히 다르다. 멜크 수도원은 엄숙하고 장엄하지 않다. 수도원 외벽은 파스텔톤의 노란색, 수도원 지붕은 주황색이다. 멜크 수도원은 건물 자체가 세련되고 밝고 유쾌하다. 그렇지만 멜크 수도원의 정신은 결코 가볍지 않게 베네딕트 홀 입구에 명확하게 새겨져 있다. "십자가 안에서만 영광이 있으리라"(ABSIT GLORIARI NISI IN CRUCE).

수도원 마당을 지나 1층으로 올라서면 온통 황금빛으로 찬란한 교회당이 나온다. 사실 바로크 양식의 수도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수도원 교회다. 수도원 교회는 수도 공동체의 목적과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구도자적 정신이 가장 잘 구현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멜크 수도원 교회는 1701년 이후 건축가 야콥 프란드타우어의 계획에 따라 완전히 재건축 되었다.

멜크수도원
멜크수도원

◆성 콜로만의 순교 위에 들어선 수도원

교회 안에 인테리어와 프레스코화를 위해서 당대 최고 예술가들이 참석했다. 특히 천장 프레스코화와 제단의 디자인이 돋보인다. 이렇듯 최고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짓고 장식한 수도원 교회의 제단 위에는 "정정당당하게 싸우지 않는 자는 승리의 관을 쓸 수 없다"(NON CORONABITUR NISI LEGITIME CERTAVERIT)는 말이 새겨져 있다.

이 구절은 기독교는 베드로와 바울이 흘린 순교의 피 위에 서 있음을 말해 준다. 수도원 교회 익랑의 왼쪽 제단, 석관에 성 콜로만(St. Coloman)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고, 오른쪽 제단에는 성 베네딕토에게 헌정된 빈 석관이 있었다. 베네딕트의 빈 석관은 이해되는데, 성 콜로만의 시신이 이곳에 있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제단 위에 높이 새겨진 글이 그 이유를 명확하게 해 주었다. 성 콜로만은 스토케라우(Stockerau) 지역에 왔다 순교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아일랜드 왕자로 왕위 계승을 거절하고 믿음의 길을 걸었다. 왕좌는 물론이고 부와 권력을 버리고 복음 전도의 길을 떠났다가 스파이로 의심받아 결국 순교의 길을 걸었다. 그렇다. 한국 교회든 세계 교회든 교회는 순교자의 피 위에 서 있다. 멜크 수도원 교회는 이러한 교회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멜크 수도원 교회는 지난 1000년의 세월 동안 수도승들과 지역 신도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린 공간이다. 지금은 교회당을 찾는 자들이 수도승이나 지역 주민보다 순례자들이나 관광객들이 더 많다. 예배당에 들어가면 너무 화려해서 눈이 부실 정도다. 나는 어디에 눈을 둘지 몰랐다. 자리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곳에서 드린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드리는 기도를 찾아봤다. 이곳은 아직도 아침 6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에 네 번의 기도 시간을 가진다.

수도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황제의 계단(imperial Staircase)이라고 부른다.마치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될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가득한 나선형이다.
수도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황제의 계단(imperial Staircase)이라고 부른다.마치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될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가득한 나선형이다.

◆황제들이 머물던 궁전

수도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황제의 계단(imperial Staircase)이라고 부른다. 2층은 과거 황제들이 머물던 궁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단은 마치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될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으로 가득한 나선형 계단이다. 196m에 이르는 황실 회랑은 북쪽 벽에는 바벤베르크와 합스부르크의 역대 황제들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황실 계단 왼쪽의 수도원 박물관에서는 수도원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은 11개의 작은 방이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다. 멜크 수도원은 1000년의 역사 동안 베네딕트 수도승들이 생활 한 곳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교육하고 사람들을 돌봤다.

수도원의 박물관과 거대한 도서관이 웅변하듯이 이곳은 중세 시대의 배움의 중심지였다.수도원 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유서 깊은 도서관이다. 이곳에는 9세기 초반에 쓰였다는 설교집을 비롯해, 10세기에 작성한 1800권의 필사본, 1501년 이전에 인쇄된 책이 850권이나 있다.

멜크수도원 도서관
멜크수도원 도서관

멜크의 수도원 도서관에는 아직도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많은 중세의 문학과 신학 그리고 과학 문헌들이 묻혀 있다. 최근에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중세 천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가 멜크 수도원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장미의 가시'(The Rose Thorn)란 중세의 '시'의 1500년경 필사본이 최고(最古)의 것이었다. 그런데 멜크 수도원 도서관에서 발견된 필사본은 그보다 200년이나 앞선 것이다. 멜크 수도원은 과거의 유산도 사라진 유물도 아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해석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움베르트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서 남긴 한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에게서 사라지는 것들은 그 이름을 뒤로 남긴다. 이름은, 언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존재하다가 그 존재하기를 그만둔 것까지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