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주제를 넘어서는 빼어난 대담

입력 2025-08-14 14:12:45

[책] 평행과 역설
다니엘 바렌보임·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 생각의나무 펴냄

[책] 평행과 역설
[책] 평행과 역설

누벨바그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편지를 보내 인터뷰를 요청한다. 그 결과 1962년 8월 13일 월요일 아침 9시부터 일주일 동안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인터뷰가 이루어졌고, 훗날 '히치콕과의 대화'로 출간된다. 트뤼포가 히치콕을 인터뷰에 끌어낸 편지에는 "당신이 세계 최고의 영화감독임을 증명하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한다"고 적혀있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두 거장,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문화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뉴욕 청중 앞에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둘의 오랜 우정은 기록으로 남겨지고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곧 '평행과 역설'이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정형성, 이를테면 빌헬름 푸르트뱅글러의 애정을 듬뿍 받았고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의 남편이었으며 피아노 연주와 지휘에서 빼어난 재능을 발휘했으나, 세간의 부정적 눈초리(부인의 투병 중에 불륜을 저질렀다는 호사가들의 언급)에 오랫동안 갇힌 인물. 그런 점에서 '평행과 역설'은 부정적 이미지로 투영된 그림자 너머에 존재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책을 통해 확인한 바렌보임은 의심할 바 없는 지성인이었고 음악을 통해 타자에 대해 발언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책에서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음악을 이야기하고, 국경과 고향에 관해 논의했으며, 바그너를 소환하여 독일인과 유대인의 음악이라는 껄끄러운 주제를 기꺼이 상정한다. 이것만으로도 이 둘의 대화는 가치와 의미를 획득한다.

"악보는 그 자체로 작품이 아니라 연주 될 때 작품으로 완성된다."(영화는 극장에서 관객과 만날 때 완성된다는 히치콕의 진술과 맥을 같이 한다.)는 바렌보임의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 또 사이드는 18세기의 오케스트라 규모와 음악당 크기를 고려하면서 당대에 작곡된 곡들을 21세기 콘서트홀에서 대규모 심포니가 연주할 때의 원전과 해석 문제를 심도 있게 접근한다. 팔레스타인을 대변하는 데 혼신을 쏟았던 지성다운 통찰이 (많은 이가 몰랐던 사이드의 음악에 대한 깊은 식견) 예술을 향할 때 얼마나 예리하고 정밀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음악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문명과 사회에 각별한 관심이 없어도 지루하지 않은 건, 두 거장 모두가 인류 공통의 언어를 편견 없이 수용하면서 공존과 평화라는 소실점을 바라보기 때문일 터. '평행과 역설'은 다니엘 바렌보임과 에드워드 사이드 두 사람 모두가 자기 분야에서 최고라는 사실을 증명했으며, 민족과 종교와 인종을 초월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흔들리는 세상을 몹시 염려하고 있다는 것도 명백히 드러내었다. 주제를 넘어서면서도 주제를 혼동하지 않는 빼어난 대담이란 이런 것이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평론가 백정우

두 사람의 친밀감 아래 똬리를 튼 각자의 전문성이 밀고 올라오는 장면과 이로 인한 긴장감조차 책 읽기의 쾌감과 경험을 선사하는 '평행과 역설'. 국내에선 2003년에 초판이 나왔지만 다소 무거운 제목 탓인지 큰 인기는 얻지 못했다. 고전음악 전반에 대해 재탐색하는 가운데 관성적으로 터부시한 음악가 바그너를 새롭게 조망할 기회를 얻는 건 더 없는 행운이자 덤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