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결과 야당 192석 대 여당 108석으로 21대 국회에 이어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졌다.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국정을 이끌어가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정권이 여소야대로 시작했더라도 재임 기간 중 정계 개편을 하거나 총선에서 승리를 통해 여대야소 국회로 전환하여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해 왔다.
문재인 정부 또한 여소야대 국회로 시작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 때문에 개혁 입법이 번번이 좌절되는 상황을 지켜본 국민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을 심판하고 여당에 180석을 몰아주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민주당 180석이라는 여소야대 국회로 시작했으나 이번 총선에서 그 지형을 바꾸지 못했다.
선거의 기본 속성은 평가다. 힘을 보태줄 것인가, 심판할 것인가 둘 중 하나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0.73%포인트 차의 박빙 승부였지만,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승패를 따져보면 국민의힘이 지역구에서 15석을 이긴 선거였다.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치러진 22대 총선에서는 비례 의석을 빼고 지역구만 놓고 볼 때 민주당 161석, 국민의힘 90석으로 민주당이 71석을 이겼다.
국민의힘 총선 패배의 근본적인 원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내세운 '공정과 원칙'이 거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났고,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을 국민이 확인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약 2배 정도 높게 유지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심판 선거라는 기본적인 선거 지형이 만들어진 상황에서 민생경제 악화로 서민의 삶이 힘들어졌다. 모든 선거에서 중도층의 표심이 가장 중요한데 중도층의 표심을 자극한 것이 바로 민생이다.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4·10 총선 이후 15~17일 전화 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투표를 할 때 가장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물가 등 민생 현안'(30%)을 1순위로 꼽았다. '정부 여당 심판'(20%)이 그다음이었고, '야당 심판'(10%), '공천 파동'(2%)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중도층에서는 '물가 등 민생 현안'이 37%로 평균보다 더 높았다.
정부 여당이 '민생'을 도외시한 건 아니다. 가짜 민생과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문제였다.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김건희 여사는 사전투표도 혼자서 몰래 할 정도로 언론 노출을 감추었고, 윤석열 대통령은 민생토론회를 이어가면서 민심을 얻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 들어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스물네 번의 민생토론회를 열고 정책을 쏟아냈다. 대통령실은 3월 17일 홈페이지를 통해 "민생토론회는 정쟁을 떠나 민생이 국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누군가 해야 한다면 지금 우리가 한다'라는 행동하는 정부로서 대통령의 의지와 철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민생토론회는 다양하고 생생한 국민 목소리를 듣고 정책 수요자의 입장에서 해결책을 마련한다는 국정 기조에 따라, 최대한 많은 지역에서 연중 지속할 계획입니다"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8일 서울 양재 하나로마트를 방문해 "대파 가격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고, 국민들은 "물정 모르는 대통령이 세상 편한 소리 하고 있다"며 가슴을 쳤다. 경기도 수원정에 출마한 국민의힘 이수정 후보가 '대파 한 뿌리 875원' 발언으로 무리하게 대통령을 실드치고 '대파 격파' 영상까지 올리면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대파가 밈(meme)이 되면서 국민들은 대파 한 단에 정권 심판과 민생 파탄을 모두 담았다. 결국 22대 총선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대파'가 되었다. 정부 여당이 승부수라고 생각했던 것이 패착이 되었다.
정부 여당은 192대 108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가? 반면, 민주당 등 야당은 민의의 무게를 이겨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처리하려고 하는 채 상병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전세사기 특별법에 대해 정부 여당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총선으로 국민의 심판이 끝난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는 180석으로도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판받는 민주당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22대 국회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회복하는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 허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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