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혁재 지음/ 이정서재 펴냄
의료 사각 시대에 놓인 대부분의 오지 어르신들은 경제적인 문제와 병원 접근성 등의 이유로 병원 진료는 물론 약조차 제대로 처방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관절이나 척추가 아파도 겨우 할 수 있는 처방은 파스를 붙이거나 뜨거운 물로 찜질하는 수준이다. '아프다. 병원에 데려가 다오', 이 한마디면 되는데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해가 되고 싶지는 않다며 어떻게든 통증을 참아내는 우리네 어머니들. 평생 자식 건사하느라 치료 시기를 놓쳐 육신은 물론 마음속까지 깊이 병들어 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 정형외과 의학박사이자 서울 강남 메드렉스병원장인 저자는 경인방송의 한 다큐 프로그램(마냥 이쁜 우리맘)을 통해 지난 2년 간 배우 우희진·강성연 씨와 함께 전국 섬과 산골 오지마을로 의료봉사를 다녔다. 척추관협착증과 퇴행성관절염 등으로 심하게 고통을 받고 있는 80여 명의 어머니들을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말마다 의료봉사에 나섰고 무료로 수술도 해줬다. 이 책은 그 사연들 중에서 감동적인 이야기들만 뽑아 엮은 것이다.
저자가 오지로 의료봉사를 하러 다닌 것은 남들로부터 칭찬받기 위함이 아니다. 레지던트 시절 오지에서 만난 어머니들이 심각한 노인성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당시 어머니들은 심한 노동으로 인해 퇴행성관절염과 통증으로 걷지 못하는 분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초보 정형외과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통증을 완화시키는 일시적인 처방만 해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그는 다짐했다. '내가 의학을 좀 더 배우고 익혀 유능한 정형외과 의사가 되면 그때 다시 돌아오리라.'
그리고 20여 년이 훌쩍 흘렀다. 우연히 경인방송으로부터 프로젝트를 제안 받고 그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주말이 되면 오지로 떠나 고통받고 있는 어머니들을 치료했다. 하지만 오지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병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전혀 몰랐다. 나이가 들면 으레 찾아오는 병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그는 어머니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치료와 수술이 아니라 우선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임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진정한 의술은 환자의 통증을 치료하는데 국한돼 있지 않다. 환자의 가슴속 상처까지 따듯하게 보듬고 그들의 인생을 치료하는 것까지 의술에 포함된다. 저자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단순히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들의 지난 세월 속 상처를 어루만지고 앞으로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의술은 인술로 향하고 행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내가 수술받고 난 뒤 얼마나 기쁜지 몰라. 우리 의사 아들 아니었으면, 방구석에 그대로 누워 산송장처럼 지냈을 것이 뻔했지. 그런데 수술받고 난 뒤 양로원에도 가고 농사도 짓고 말벗도 생기고 하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 정말 다시 태어난 기분이야."(책 76~77페이지 중)
저자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기쁜 것은 오지 어머니들이 절망적인 현실에서 희망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앉고 서기 힘들고, 걷지 못하는 것만큼 불행한 삶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나의 작은 재능이 우리 어머님들에게 희망과 용기가 될 수 있다면 힘 닿는 때까지 나눔을 실천할 생각이다. 이것이 바로 의사의 길이 아니겠는가. 연골이 닳은 무릎과 힘줄이 끊어진 어깨, 시큰거리는 손목은 물론 고단한 세월 속에서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게 해드리고 싶다."(작가의 말 중)
단순히 한 정형외과 의사의 오지마을 의료봉사 스토리라 하기엔 그 속에 담겨있는 우리 어머니들의 희로애락과 삶의 여정이 눈물겹다. 쉬울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은 나누고 베푸는 삶의 숭고함에도 고개가 숙여진다 . 272쪽, 1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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