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농삿일만 하셨던 시어머님…손수 만들어 주신 도토리묵은 최애의 음식"


2001년 4월 15일, 나는 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31세의 적지 않은 나이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어리고 철이 없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대구 인근 지역의 한 성씨가 모여 사는 마을에서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정미소를 운영하는 집안의 4남매중 막내아들이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형님과 누님들은 모두 결혼해 따로 살림을 나가 사셨고, 남편은 부모님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시어머님은 집안의 가풍도 배울 겸 1년만 함께 살다 분가를 하라 하셨고, 나도 큰 불만 없이 결혼해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됐다. 이런 약속은 남편의 사정으로 인해 4년의 시간을 시댁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결혼 전 나는 저 푸른 초원위의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전원생활을 동경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지금은 신도시가 되어 번화가가 되었지만, 내가 결혼할 당시 그곳은 논과 밭이 많은 농촌이었으며, 한번 외출을 하려해도 몇 대 다니지 않는 버스 시간에 맞춰 외출을 해야 했다.
시부모님은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오전 5시부터 일어나 아침을 드시고 밭에 나가 일을 하셨고, 낮에는 정미소에서 일하시며 꿀벌을 키우셨다.
한 날엔 어머님과 수제비를 함께 먹었다. 내가 "어머님 이제 여행도 좀 다니시고, 일 좀 그만하시고 두 분이서 재미나게 사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어머님은 "평생을 없는 집에 시집와서 일만 하고 살다보니, 노는 게 더 힘들다"고 하셨다.
"봄이 되면 꽃이 피는 구나!"가 아니라, "저 땅에 무얼 심을까?" 고민하는 분이셨다. 자식들이 너무 맛있다하면 그 다음 해에 두 배로 더 많이 만들어 주시던 어머님….
지금도 어머님 하면 떠오는 게 많다. 밭에서 일하시며 노래를 흥얼거리시던 모습, 어머님이 만들어 주시던 음식들. 그 가운데 도토리묵, 동지팥죽, 소머리국밥, 김장김치, 고추장은 잊지 못하는 최애의 먹거리이었다. 그때 좀 귀찮고 번거로웠는데 지금은 어머님의 손맛을 배워 둘 걸 후회가 밀려든다.
8년 전, 어머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버님이 암 투병으로 고생하실 때도 강인한 모습으로 버티시더니,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시며, 한없이 약해지셨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눈물이 많아지셨다.
내 남편이 "엄마 이러면 죽어요. 뭐라도 먹고 기운을 차려야지!" 그러면 "야야 니 아버지 죽고 나니 저짜(저쪽) 지나가는 들고양이도 날 비웃는 것 같다" 하시며 눈물을 찍어 내신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던 날 아침, 어머님이 내손을 조용히 잡으시며 "야야, 니는 애들하고 재미나게 살아라. 힘들게 고생하지 말고. 그리고 고맙다" 라고 하셨다.
그해 때마침, 나는 '해질역'이라는 2인극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침에 어머님 집에 들려 아침상을 차려드리고, 낮 시간에 연습을 하고, 저녁엔 남편이 어머님 곁을 지키며 공연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공연 내용이 먼저 떠난 남편이 죽음을 앞둔 노부인을 마중오며 일어나는 노부부의 사랑이야기이었다.
어머님은 내가 '해질역' 공연을 하기 전에 돌아가셨고, 그 공연을 보지 못하셨다. 난 한 달의 공연기간 동안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에 많이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어머님 가족이 되었고, 아들의 사랑을 함께 나누며 애증의 시간을 보낸 지난 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진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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