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현역 국회의원 경선에서 일방적 유리
◆TK 정치권, 물갈이 없이 현역 의원들 본선 티켓 확보
◆도전자들 불공정 없도록 제도 보완 필요
국민의힘 4·10 총선 공천 경선이 현역 국회의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게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젊고 패기 넘치는 도전자들은 현역 의원의 기득권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 절대적 유리
국민의힘은 지난 25, 28일 두 차례에 걸쳐 경선 결과를 발표했다. 현역 의원들의 성적표를 보면 1차 경선에 참여한 현역 5명 전원이 본선에 진출했다. 동일 지역구 3선 이상 15% 감산 적용을 받았지만 정우택(5선), 이종배(3선), 박덕흠(3선) 의원 모두 승리했다.
이 부분을 눈여겨봐야 한다. 공천관리위가 실명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3명 중 당 공천 룰에 따라 하위 10~30%에 포함돼 20%가 감산되는 의원이 있다. 동일 지역구 3선 15% 감산에 20%가 합쳐 총 35%가 감산됐다.
그럼에도 경쟁자를 물리치고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현역 대 도전자' 경선에서 현역을 35%까지 페널티를 줘도 유리하다는 게 드러났다. 현역 프리미엄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1차 경선에서 초선인 장동혁 사무총장과 엄태영 의원도 현역 불패에 힘을 보태고 본선에 진출했다.
2차 경선에서 영남권 의원들이 대거 살아남았다. 대구경북(TK)에서 현역 11명이 경선에 나서 8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대구는 주호영(5선), 김상훈(3선), 김승수(초선) 의원 등 3명이 승리했다.
경북에선 경주 김석기, 포항 북구 김정재, 김천 송언석, 상주문경 임이자(이상 재선) 의원에다 구미갑 구자근(초선) 의원 등 5명이 각각 도전자를 꺾고 공천권을 거머쥐었다
현역 의원이 패한 지역은 대구 달서구병의 김용판 의원이 유일하다. 김 의원의 상대는 권영진 전 대구시장이다. 권 전 시장은 재선 대구시장에다 국회의원을 지낸 중진이다. 정치적으로 순진한(?) 도전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부산은 현역 불패 현상이 깨졌다. 이헌승(3선), 백종헌 의원은 본선행에 진출했다. 하지만 장예찬 예비후보, 김희정 예비후보가 각각 현역 의원인 전봉민, 이주환 의원을 꺾는 이변을 보였다.
장예찬 후보는 친윤에다 당 청년최고위원을 지내 인지도가 높았고, 김희정 후보는 재선의 전직 의원이다. 상대인 현역 의원들은 모두 초선이었다.
울산도 김기현(4선), 서범 의원 등 현역이 승리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1, 2차 경선에서 현역 의원 23명 중 17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나머지 6명 중 결선을 통해서 본선 티켓을 거머쥘 현역 의원도 절반 이상이다. 결국 현역 의원이 경선에서 패한 경우는 초선 의원들이다. 재선 이상 의원들은 단 한 명도 경선에서 패하지 않았다.
재선 이상 국회의원은 지역구 관리를 8년 이상 했다. 도전자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8년 이상 지역구를 관리한 현역 의원들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국민의힘 공관위가 현역 의원 프리미엄을 쉽게 생각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28일 "감산해도 이게 벽은 있구나, 현역 메리트는 있구나 했다"며 "신인 후보자들이 득표율이 낮더라. 공을 들여서 1,2년 정도 도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공천이 현역 위주로 되면서 '중진 불패, 늙은 정당'이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다. 30~40대 후보가 13%밖에 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영남 텃밭에서 경선의 장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경선이 아니면 지역 유권자를 외면하고 서울의 권력자만 바라보는 게 영남 정치의 현실이다. 그나마 경선을 하면 유권자를 무시하지 않는다. 다만 현역 프리미엄을 최소화해야 공정한 경선이 이뤄진다.
'현역 프리미엄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는 앞으로의 숙제다. TK 정치권을 살펴보자. 국민의힘의 지난해 3·8 전당대회에서 TK 정치권은 무기력했다. 대표 경선에 참가조차 못 했고, 이만희 의원이 최고위원 경선에 나섰지만 1차 컷오프됐다. 이 같은 이유로 TK 정치권이 텃밭 유권자에게 실망을 안겼다. 그럼에도 현역 의원들이 대거 공천을 받았다.
이는 경선 시스템이 정교하지 않다는 얘기다. 실망을 안긴 정치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현재 경선 또는 공천 시스템으로는 '신상필벌'이 작동하지 않는다.
경선을 당대표 선거처럼 치르면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합동연설회를 수차례 열고, 토론회도 개최해 당원들로부터 직접 평가를 받게 하자. 현재처럼 여론조사를 통해 경선을 치르는 것은 '경선이 아니라 인지도 조사'에 불과하다. 현역 의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합동연설회와 토론회를 거치는 동안 현역 의원이 지역을 위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못한 게 여실히 드러날 것이다. 도전자들은 현역 의원들을 강하게 공격하고, 공약을 지키지 못한 의원들이 쩔쩔매는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후보들의 경쟁력도 높아지고 당원들과 소통하는 법도 배운다.
지금의 경선은 능력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인지도'를 측정하는 '반쪽 짜리 경선'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경선이라야 TK를 비롯해 국민의힘 텃밭인 영남 정치도 살아난다. 야심만만한 젊은 인재가 공정한 경선을 통해 정치권에 혜성처럼 등장할 수 있어야 경선의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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