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 박사(博士)가 나오면 잔치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박사 학위 취득을 사법시험, 행정고시 합격과 같은 반열에 올리기도 했다. 특히 미국, 영국, 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 박사'는 대우가 각별했다. 소 팔고, 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것도 버거웠는데, 박사라니!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대업(大業)이다. 1980년대, 집안 형님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동네 잔치, 집안 잔치가 벌어졌다. 집안 아재들도 당신 자식이 박사가 된 듯 어깨를 들썩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자에 대한 선망(羨望)이 크다. 배우지 못한 설움 탓일까? 선비를 추앙하는 유교 문화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박사는 권위의 상징이다. 박(博)은 넓다, 깊다, 많다, 크다는 뜻을 갖는다. 그래서 학제(學制)에 밝지 않은 사람들은 박사를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박사는 '연애 박사' '컴퓨터 박사'처럼 어떤 일에 정통하거나 숙달된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동네 병원에 가면 '의학박사' 명패가 원장 책상에 보란 듯이 자리 잡고 있다. '의학박사라면, 병을 더 잘 고칠 것'이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아들이 아버지 제사를 지낼 때 지방(紙榜)에 쓰는 일반적인 문구다. 여기서 '학생'은 '관직이 없는 선비'를 일컫는 예칭(譽稱)이다. 선비와 무관한 삶을 살았더라도 관례처럼 '학생'이라고 썼다. 학생 대신 처사(處士)란 용어를 쓰는 집안도 있다. 그래서 장관을 했으면 '현고장관부군신위', 박사였으면 '현고박사부군신위'라고 표현한다.
그랬던 박사가 푸대접을 받고 있다. 물론 박사가 과거보다 흔해진 이유가 있기도 하다. 국가통계포털(KOSIS)의 '2025년 국내 신규 박사 학위 취득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박사의 무직자 비율은 33.3%였다. 특히 30세 미만 청년 박사의 절반 이상은 무직 상태다. 박사 학위를 받고도 시간강사와 단기 계약직을 전전한다. 구직을 포기한 경우도 많다. 일할 곳이 없어서다. 박사란 '가방줄'이 취업에 되레 장애가 되기도 한다. 대학은 학령인구(學齡人口) 감소로 전임교원 채용을 줄이고 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공공 연구기관의 취업문은 좁다.
특히 인문·사회 분야의 위기는 심각하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에서 인문·사회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낮다.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박사후연구원(博士後硏究員) 제도나 전문 연구기관도 부족하다. 이 때문에 대다수 박사들은 강의 몇 시간으로 겨우 생계를 잇거나 아예 전공과 무관한 생업에 종사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엔 언어와 역사, 문화,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인문·사회 분야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 주권 AI 개발에도 한국어 데이터와 언어학 연구가 필수다.
인문학을 비용으로만 보는 시각은 근시안(近視眼)이다. 인문학 홀대는 궁극적으로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박사 인력을 국가 미래를 위한 전략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함께 지역에도 공공 연구기관과 정책 연구 기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대학·지자체·산업계를 연계한 '지역 정주형(定住型) 연구 생태계'도 구축해야 한다.
박사는 학문에 매진(邁進)한 끝에 얻는 최고의 전문성이다. 개인은 물론 국가가 막대한 교육·연구비를 투입해 길러낸 핵심 인적 자원이다. 박사들이 쉬거나 단순 업무에 종사하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다. 박사 3명 중 1명이 백수라니, 오호통재(嗚呼痛哉)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