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대구경북언론인회장의 日 이시카와현 지진 현장 탈출기

입력 2024-01-22 14:24:12 수정 2024-01-22 19:17:36

"여진 계속…호텔서도 샤워는커녕 배고픔도 잊고 밤 지새워"
지진을 느낀 순간 일제히 역사 밖으로…소리치는 사람도 망설이는 이도 없어
다음 날 신칸센 5시간 걸려 도쿄 도착
재해 상시 노출 日 국민들 침착 대응…우리는 무엇이 급해 새치기 일삼는지

1월 2일 지진으로 폐쇄된 신칸센 선로와 열차 정지를 안내하는 가나자와 역의 전광판
1월 2일 지진으로 폐쇄된 신칸센 선로와 열차 정지를 안내하는 가나자와 역의 전광판

밤새안녕, 지진 탈출기

'콰르르르릉쿵광'

가나자와 신칸센 역사가 무너지는 것 같은 진동이 굉음과 함께 덮쳐왔다. 연말휴일을 일본 이시카와 현의 온천지대에서 보내고 470km 떨어진 도쿄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우리 일행은 2024년 1월 1일 오후 4시48분 열차를 기다리며 선물점에서 기념품을 챙기고 주먹밥을 먹으며 새해 설계에 들떠 있었다. 역사 천정에서 열차가 추락하듯 굉음과 함께 진동이 역사를 덮친 것은 그때였다.

지진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기둥 아래로 피하라' '머리를 보호하라'는 등의 대피요령이 퍼뜩 떠올랐다. 그러나 주위에는 소리치는 사람도 망설이는 사람도 없이 모두 역사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우리도 일제히 역사 밖으로 뛰어나갔다. 누가 앞서고 누가 뒤따랐는지 정신이 없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역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앞으로 닥칠 일을 논의하는 듯했다. 조용하면서도 질서 있는 대피는 마치 민방위 연습 상황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우리 일행에게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인근 노토반도에서 진도 7.6 규모의 강진이 왔으며 지금도 진도 4, 5 정도의 여진이 계속 되고 있다고 방송하고 있었다.

몇 해 전(2016년 9월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진도 5.8 규모의 지진을 대구에서 경험한 나로서는 진도 7.6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 나와 대폿잔을 기울이던 후배들은 부랴부랴 신문사로 뛰어갔고 그때의 경주 지진은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최대 규모의 지진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가나자와 역의 1월 1일 오후 지진 직후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폐쇄된 역사
가나자와 역의 1월 1일 오후 지진 직후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폐쇄된 역사

지진은 우리가 휴가를 보냈던 이시카와의 와쿠라(和倉)온천 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우리가 나온 뒤 곧바로 지진이 덮쳤고 목조가옥이 대부분인 마을은 지진으로 쑥대밭이 되었다고 했다. 이시카와에서 사망자만도 200명이 넘는 이번 지진이었지만 인근 가나카와의 역이나 호텔은 내진설계가 잘 되어서인지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열차 선로를 뒤흔들어 놓은 탓에 모든 열차들은 멈춰 섰고 우리는 역 광장에서 밤을 새워야 할 처지가 됐다. 폐쇄된 역사에서는 경찰과 역무원들이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역 바닥엔 천정에서 물이 흘러내렸고 조금 전까지 고객들로 붐비던 역사 내부의 가게들은 모두 굳게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정신을 수습한 우리는 역 앞 ANA호텔로 들어갔다. 역 광장에서 밤을 새울 수는 없었다. 더구나 언제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기차가 떠날 때를 기다릴 수는 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호텔 로비에는 입구부터 이미 많은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호텔 측은 이런 재난에 대비한 듯 여행객들에게 의자를 제공했지만 모두가 앉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진이 나면 건물 밖으로 대피하라 했는데, 과연 여진이 계속되는 상태에서 호텔 안에서 피하는 것이 잘하는 짓일까? 그렇다고 이국 땅 낯선 길바닥에서 겨울밤을 보낼 수도 없었다. 우리는 일행 중 몸이 불편한 환자가 있어 밤을 새울 수 없다며 선처를 부탁했고 비상계단으로 6층 객실까지 갔다.

그러나 여진은 계속됐고 무서워서 샤워는커녕 옷을 벗고 잘 수도 없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호텔에서 정찬을 즐기며 호사를 부렸는데, 언제 뛰쳐나가야 할 상황이 닥칠지 초조해하며 밤을 새웠다. 배고픔도 잊었고 식사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1월 2일 아침 일찍 역에 나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도쿄행 신칸선 열차는 선로가 복구되면 오후 3시 이후에 운행할 예정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언제까지 호텔에서 보낼 수는 없어 일단 줄을 서서 도쿄행 자유석 티켓을 예매했다. 지진에다 신정연휴여서 시내 가게마다 문을 닫았고 겨우 찾아낸 편의점에서 호빵으로 허기를 속였다.

1월 2일 가나자와 역에서 폐쇄된 신칸센 선로와 신칸센 운행 정지 화면앞에서 열차 재개를 기다리는 승객들
1월 2일 가나자와 역에서 폐쇄된 신칸센 선로와 신칸센 운행 정지 화면앞에서 열차 재개를 기다리는 승객들

오후 1시쯤 도쿄행 열차가 예정 보다 빠른 2시48분 6번 플랫폼에서 출발 예정이라는 전광판 알림을 보고 막무가내로 개찰구를 빠져나가 플랫폼에 가니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 아닌가. 이 사람들 모두 아침부터 플랫폼에서 열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잘 찾아왔다고 안도하며 대기하는 사람들이 적은 줄을 찾아 자리를 정했다. 도쿄행 열차가 도착했고 조용히, 질서 있게 기차는 승객들로 채워졌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타는데도 줄이 흐트러지지도 않았고 소리도 없었다.

우리 일행은 용케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신칸센 한 칸마다 100명씩 앉고 통로에도 빽빽이 들어서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기차는 예정보다 늦은 3시가 넘어서야 출발했다. 도쿄까지 2시간30분이면 닿는 거리를 5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했다. 열차가 가다가 다른 신칸센 선로에서 문제가 생기면 일제히 영향을 받기 때문에 안전이 확인 확보될 때까지 열차는 정차해 있었고 또 신칸센답지 않게 천천히 운행했다.

도쿄역에 진입할 때는 밀린 열차 때문에 40분간 대기해야 했다. 도착할 때까지 화장실은 물론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통로에 끼어서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수많은 여행객들에게 미안해서였다.

도쿄에 오는 동안 하네다 공항에서는 지진 구호품을 실은 해상보안청 항공기와 일본항공 여객기가 충돌한 사고가 났다. 승객과 승무원 379명 전원이 무사히 탈출하자 여객기는 폭발과 화재에 휩싸였다고 했다. 승무원의 안전한 여객수송임무 수행도 놀랍지만 승객들의 협조가 더욱 감동이었다. 모두 신발을 벗고 안경 등 귀금속도 위험하다며 벗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모두들 소지품을 그냥 두고 몸만 빠져 나왔다는 거였다. 본인 뿐 아니라 다른 승객들의 탈출에도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귀국길 한국행 비행기에서 그런 생각이 났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자마자 승객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비행기 선반의 짐을 꺼내 들고 비좁은 통로에서 나가려고 비벼대고 있었다. 천천히 줄 서서 나가도 출국장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무엇이 그리 급한지,

지진 같은 재해로부터 상시 노출돼 있는 나라의 국민들이 놀랍도록 침착하고 여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잦은 재해와 그에 대한 체질화된 대처 훈련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 그리고 그 다음은 하늘에 맡기는 것 같았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 그것이 내일 나에게 닥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 조건은 모두에게 똑 같이 적용된다. 그러니 새치기하면서까지 앞서가려거나 하나 더 가지려 하지 마라. 그것이 같이 사는 지혜라는 가르침이다.

밤새 안녕. 지진을 경험하면서 얻은 지혜다.

이경우 대구경북 언론인회장
이경우 대구경북 언론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