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점심부터 '바글바글'…전국 1위 마약류 다이어트 병원 '오픈런' 여전

입력 2023-10-17 14:13:40 수정 2023-10-17 20:42:53

대구 '다이어트 성지', 30분 만에 마약류 약 처방
지난해 처방한 마약류 2천216만개…환자 1인 당 700여개 꼴
전문가 "약 끊으면 요요 현상…의존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지난 16일 취재진이 대구 달서구의 한 다이어트 병원에 방문한 뒤 받은 처방전과 약품 안내서, 비만도 측정 결과지. 박성현 기자
지난 16일 취재진이 대구 달서구의 한 다이어트 병원에 방문한 뒤 받은 처방전과 약품 안내서, 비만도 측정 결과지. 박성현 기자

지난 16일 오후에 찾은 대구 달서구의 한 다이어트 병원. 가정의학과전문의 1명이 근무하는 이곳은 점심시간이 막 끝난 시점이었지만 이미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병원 대기실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 있었다.

문진표 작성하고 비만도 등을 측정하자 곧바로 전문의의 진료가 시작됐다. 의사는 구체적인 다이어트 상담을 이어간 뒤 4주 동안 복용할 수 있는 향정신의약품들을 처방해줬다. 이날 병원에 방문해 약을 받기까지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병원비는 초진비 1만원을 포함해 5만원(약 처방 1주 기준 1만원) 정도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곳은 작년 한 해 3만1천800명에게 마약류 2천216만개를 처방했다. 환자 한 명 당 약 700개의 마약류를 처방한 셈이다. 언론에 알려진 뒤로 문진을 강화하고 대량 처방도 삼가는 듯했지만, 여전히 마약류 의약품을 쉽게 처방받을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처방된 마약류 의약품은 ▷식욕억제제 펜디라정(1천68만개) ▷항우울제 데파스(435만개) ▷알프람정(356만개) 순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명 '나비약'으로 불리는 디에타민도 약 8천400개 처방된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는 이들 마약류가 과잉 처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김무건 대구경찰청 마약수사대 계장은 "지난 6월부터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약품마다 식약처가 정한 안전사용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을 넘었는지 여부를 살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과 유경험자들은 다이어트가 목적이라 하더라도 마약류를 오·남용하면 마약중독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식욕억제제 오·남용이 수면 장애, 우울증 등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는 얘기다.

장기간 식욕억제제를 복용했다는 A씨는 "처음엔 효과가 좋아 반 알만 먹어도 살이 쭉쭉 빠졌는데 점점 내성이 생기는 듯했다. 결국 복용량을 늘리게 됐다"라며 "그러다 수면장애와 소화불량 등 부작용이 찾아왔다. 더 지속하다가는 건강을 잃을 것 같아, 약을 끊었다"고 털어놨다.

이향이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장은 "현재 유통되고 있는 식욕 억제제 등 의약품은 원래 고혈압 등 만성질환의 악화를 막기 위해 비만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된 것인데 다이어트 등 미용의 목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약을 먹고 당장 체중 감량의 효과를 보더라도 약을 끊은 뒤에는 다시 요요현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약에 대한 의존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은 "이미 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한 복용 기준과 관리 등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이 약을 처방하는 의사들에 대한 별도의 교육은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하는 의사들이 중독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깨닫고 처방에 신중을 기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