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유신 전 대구서 교육자대회 개최…치사 '비망록' 초안 최초 공개
곳곳에 불가피성·당위성 설명…'민주주의 발전' 정치 개혁 강조
1편엔 교육 통합 애국심 고취…유신 구상 출발·지향점 유추
2편 국난 극복위한 결단 담아…북한 문제 다룰 땐 거친 표현
화랑정신 강조 ‘우리 풍토에 알맞은 민주주의 발전’ 거론 주목
1970년대 초반 대한민국 상황은 엄혹했다. 1968년 울진·삼척에 무장공비가 출현했던 후유증으로 안보 위기감이 컸고, 미국은 월남전에서 고전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내비치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1971년 대선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이 김대중 후보를 가까스로 눌렀지만 야권 중심의 반발은 여전했다.
마침내 박 대통령은 교육을 고리로 타개책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1년 뒤 대구에서 유례없는 규모의 교육자대회를 열었고, 그해 10월 유신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교육자대회와 유신과의 관련성은 없을까. <편집자주>
◆초대형 규모 교육자 대회 대구서 열어
10월 유신을 6개월 여 앞둔 1972년 3월 24일 대구실내체육관. 국무위원 전원과 국회 문공위원회 의원·전국 77개 대학총장‧·전국 전문학교학장·초중고 교장 등 교육관계자 약 8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초대형 규모의 '총력 안보를 위한 전국교육자 대회'가 개최된다.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 특히 대한민국의 지향점을 선포한 이날 대회는 '단군 이래 최대 교육 이벤트'로 불린 만큼 이례적이었고, 전국의 일간지 1면 톱을 장식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치사를 한 박 대통령이 행사에 앞서 구상한 두 편 짜리 자필 기록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평소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천착해온 소장자 최길하 씨(시인)가 공개한 원고는 1·2편으로 나눠 구성됐다.
박 대통령이 대회를 준비하며 비서실이나 문교부 실무진에 맡기는 대신 직접 치밀하게 써내려간 기획 초안서다. 박 대통령 연설문집 6권 7대 편 178페이지(대한공론사 출판) 전국교육자대회에서 발표한 치사의 초고에 해당된다.

1편의 경우 1972년 2월 24일 비서실로 넘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대통령비서실'이 인쇄된 A5 전용용지에 1편 18페이지‧2권 13페이지 등 총 31페이지(200자 원고지 환산 약 70매)에 달한다.
우리 교육이 지향할 바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사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통찰력과 비전이, 교육은 물론 정치‧사회‧경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담겨 있다.
모종의 결단이 임박한 가운데 비망록 곳곳에서 유신의 불가피성과 당위성을 암시하거나 설명하는 대목이 엿보인다. 정치 개혁을 강조한 항목에서는 '우리 풍토에 알맞은 민주주의 발전의 기틀'에 방점을 둔 표현이 나온다. 10월 유신 구상의 출발점과 지향점이 어디인지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자료다. 이후 박 대통령은 각종 행사 연설 때마다 이 내용을 강조한다.(연설문집 6권‧대한공론사). 대구 행사 뒤 정례화된 교육자대회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거듭 되풀이한다.
박 대통령은 심혈을 기울여 '참고 자료' 1편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2편 '가제 시안, 교육에 관한 담화문'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도 역사를 환기하며 국내외 현실과 상황을 분석하고,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고심한 부분이 잘 드러나고 있다. 부분 부분 북한 문제를 다룰 때는 거친 표현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버지까지 동무라고 하는 북괴에게서 우리는 한 쪼가리도…'라는 식이다.

◆국난 극복 사례로 화랑 정신 거론
특히 미래교육의 원천을 신라에서 찾고 있는 대목이 두드러진다. 신라 임신년 때 화랑 2명이 나라에 충성을 맹세한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 담긴 신문을 오려 원고에 그대로 붙여 놓았다.
1970년대 초반 국내외 정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임신서기석의 청년 정신과 다짐이 절실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설총‧최치원과 더불어 신라 3대 문인인 강수 선생과 문무왕의 친동생인 김인문 장군의 공적에 대해 거론해 롤 모델로 삼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1편에서 신라가 가장 취약한 지정학적 위치에 국세가 뒤쳐졌음에도 통일을 이룬 배경을 언급 한다.
'국적 있는 교육'의 주제를 '임신서기석'에서 끌어오는 방식의 대단히 정교하고 흥미로운 전개다.
또 국가의 이념적 교육 현실 등을 국민교육헌장과 더불어 매우 비중 있게 설명하면서 새마을 운동과 연계해 애국심으로 구현할 것을 천명한다. 교육과 사회, 국가가 함께 가야 한다는 신념이다.
율곡 이이의 임진왜란에 대비한 10만 양병론 등 유비무환을 역설하고.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정신을 거론해 대통령 자신이 가진 사상의 공감대를 넓히려는 모습도 보인다.
아울러 역사관과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후 국사가 독립 교과가 되며 예비고사와 공무원 고시에서 적용되기에 이른다.
1편의 참고 자료에는 '국난 극복과 학교 교육' '교육자에 대한 10대 들의 기대'가 목차에 들어있다.
'교육자에 대한 10대 들의 기대'에는 1972년 1월 26일자 경향신문을 적시하며 서울 남녀 고교생 295명의 사회개혁 주체를 설문 조사한 부분을 담았다. 영향력과 관련, '교육자가 49%영향을 준다'라고 답하고 그 다음으로 정치인 33% 종교인 14%인 사실을 인용해 교육을 매개로 한 국가의 미래를 중시하고 있다.
유신으로 가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라는 인식으로 풀이된다.
◆10월 유신과 교육자대회 연관성은
2편은 1편을 기반으로 교육자대회 개최 동기와 국난 극복을 위한 박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면서 대내외적 위기 극복을 위한 중대한 결단을 암시한다.
'교육에 관한 담화문'의 목차에선 '주체사상을 밝히기 위한 정신사적 반성과 민족사관의 정립'이란 콘텐츠로 고뇌어린 결단을 은유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최 씨는 자료를 내놓은 이유에 대해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때도 공개할 지 고민이 많았다"라며 "더 늦기 전에 박 대통령의 초고가 시작부터 관철에 이르기까지 베일에 쌓여있는 10월 유신 과정을 파악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10월 유신은 1969년 3선 개헌 뒤 국내 정치와 국제 정세에 위기를 느낀 박 대통령이 구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전개 과정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유신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떠나 당시 박 대통령의 고뇌와 구상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구교육자대회는 잊혀졌다. 기념식수와 기념비는 앞산에 방치되다 시피했다. 2012년이 되어서야 대구시교육청이 대구교육 역사의 흔적을 찾아 돌보며 정신 계승에 나섰다.
우동기 당시 대구시교육감(현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장)이 기념비의 존재 사실과 현재 상태 등을 주변으로부터 전해 듣고 현장을 방문한 이후부터다.
시교육청은 관련 기록물들을 확인하고 정비계획을 수립, 앞산공원관리사무소와 협의를 거친 뒤 12월 앞산 자락 길에 안내표지판 2개를 설치했다.
또 기념비 주변의 잡목을 제거하고 기념비 주위를 경계석으로 두르고 바닥에 자갈을 깔았다.
우동기 위원장은 매일신문과의 통화에서 "기념비가 방치돼 있다는 말을 듣고 정비를 했다"며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설치 당시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교육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로 만들고자 했던 게 기억난다"고 밝혔다.
◆소장자 최길하 씨 "10월 유신 진실 규명‧올바른 해석에 도움 됐으면"
"20년 전 우연히 경매에서 교육자대회 초안 1편을 손에 넣게 됐습니다. 그 1년 뒤 2편을 비슷하게 구했으니 아무래도 우연이 아닌듯 싶어요"
소장자 최길하 씨는 박정희 대통령 치사 '비망록' 입수 과정을 들려주며 "여러 차례 망설이다가 유신 51주년이 되는 오는 17일을 앞두고 공개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처음 보는 순간 만년필로 쓴 자음의 필적 구성과 글자의 종결 처리 부분, 구어체적 문장의 특유한 어투에서 박 대통령의 필적을 확신했다고 한다.
초안 윗부분의 사인이 믿음을 더하게 했다. 박정희대통령 기념관 측은 박 대통령 사인이 맞다고 했다.
그는 중앙일보 장원(시조)을 비롯 동아일보(시조)·한국일보(동시)·불교신문·충청일보(이상 시) 등 신춘문예 5관왕이다.
또 동탑산업훈장을 받은 산업엔지니어 출신이다.
성신양회에 근무하며 미술품에 관심을 두었고, 서지학 관련 서적을 수집했다.
소장품이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공간‧한국동란‧60년대 교과서만 600여권과 기타 교육사자료를 더해 약 900점에 달한다.

최 씨는 "교육자대회 초안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조명을 받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현재의 잣대로 70년대 초반의 상황과 정세를 해석하는 시각은 수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초안이 시대 상황과 유신이 전개된 역사를 밝히고 해석하는 데 가치 있게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