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구의 새로운 꿈

입력 2023-10-11 10:41:03 수정 2023-10-15 15:50:36

박상전 경제부장
박상전 경제부장

대구가 세계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겠다며 'π 프로젝트'라는 비전을 공개했다. 국내 반도체 생산 라인은 충북 청주시 밑으로 내려온 적이 없는데, 갑자기 추풍령 고개 아래에 있는 대구가 나선다는 말에 '뜬금포'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국내도 아니고 세계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구상은 더더욱 의심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가 아닌 비메모리(시스템) 분야로 시선을 돌려 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반도체는 메모리와 시스템으로 나뉜다. 정보를 저장하고 연산해 내는 메모리 반도체는 기능이 단순하고 표준화가 돼 있어 대량 생산에 적합하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각종 전자제어 기술 등을 집약한 시스템으로 개발은 어렵지만 소비자 니즈에 맞춰 자유롭게 제작할 수 있다. 소품종 대량 생산과 다품종 소량 생산의 차이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

국내 업체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60%(2021년 기준)를 점유하고 있으나 시스템 분야에서의 성적은 3%도 채 되지 않는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가 메모리 반도체보다 3배나 큰데도 우리는 '블루오션'인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외면한 채 과포화된 메모리 시장에만 매달려 있는 셈이다.

우리가 시스템 반도체에 도전할 경우 '수도권-충청권으로 이어지는 기존 메모리 반도체 생산 라인을 활용하면 안 되느냐'는 관성적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불가능하다. 이름만 같은 반도체이지 메모리-시스템 각각의 분야는 특성과 제조 기술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둘을 한곳에 모아 놓으면 자칫 메모리 반도체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시스템 개발의 진척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게 된다.

이어 '왜 시스템 반도체의 굴기 지역이 대구여야 하는지'라는 의문이 뒤따를 수 있다. 이 같은 대답의 일환으로 우선 대구는 관련 인력 확보에 유리하다. 1970년대 경북대 전자공학과 출신들이 현재 삼성·현대 반도체 분야 임원진에 대거 포진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의 퇴직 기한이 코앞이다. π 프로젝트를 추진한 권용범 (사)한국퍼스널모빌리티협회 이사장에 따르면 해당 임원들 대부분을 접촉한 결과 퇴직 후 고향에 내려와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거나 후학 양성에 나설 의향이 강했다. 즉각 현장에 투입할 인력과 인재 양성이 가능한 셈이다.

대구와 인접 지역은 전력과 산업 용수 확보 측면에서도 용이하다. 동남해안에 위치한 원전에서의 전력은 수도권보다 낮은 누전율로 즉각 공급이 가능하며, 낙동강과 저수지의 풍부한 수량은 용수 사용이 많은 반도체 산업을 커버하기 충분해 보인다.

해당 부지도 이미 마련돼 있다. 대구 북구갑이 지역구인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컨트롤타워를 담당할 팹리스(반도체를 설계·디자인하는 곳) 센터는 구 경북도청 부지에 위치한다. 생산 기지는 경산의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과 조현일 시장이 대구와 인접한 곳에 명당 자리를 점찍어 둔 상태다.

대구가 적지인 또 다른 이유는 산업 연관성이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앞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인데, 주로 5G 이동통신,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대구가 차세대 동력 사업으로 궤도에 올려놓은 UAM과 로봇, AI 등은 시스템 반도체의 내수 시장 확보와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쯤 되면 대구가 꾸는 꿈이 그저 일장춘몽이 아니라 상당히 구체화된 계획이라고 볼 수 있다. 백사장에 제철소를 세우고 버려진 임야에 구미공단을 만들어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변화시킨 '박정희'의 제2 프로젝트쯤으로 불려도 될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