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新) 도자기 전쟁

입력 2023-09-21 11:10:53 수정 2023-09-21 19:05:30

송경창 경북경제진흥원장

송경창 경북경제진흥원장
송경창 경북경제진흥원장

도자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하이테크 제품이었다. 최초의 대량생산품이었으며 최대의 국제 교역 상품이었다. 도자 기술은 15세기까지 중국에 의해 독점되었고 18세기 초에 가서야 유럽도 자체 생산 국가가 될 수 있었다.

17세기 유럽은 동양에 비해 과학기술이 뒤떨어져 있었다. 자기 제조에 필요한 원료와 섭씨 1천300도까지 불의 온도를 끌어올릴 수 없었다. 당시 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조선뿐이었다. 그 무렵 철기로 만든 식기를 쓰고 있었던 유럽 귀족들은 중국제 자기를 보는 순간 그 신비로움에 감탄했다. 그 신비롭고 청아한 소리를 가진 하이테크 제품을 '화이트 골드'라고 불렀다.

17세기 화이트 골드인 도자기 밸리는 중국 장시성 '경덕진'이었다. 경덕진은 명실상부한 중국 자기 산업의 메카였다. 자기의 주원료인 고령토의 주산지였고 자기 제조 용광로와 장인들의 도전이 응축된 산업 시스템의 집적지였다. 중국 도자기는 고대 과학과 예술의 절정체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는 도자기를 만든 세계 두 번째 국가였다. 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로 이어지는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가진 도자기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상품화하고 이를 세계 시장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도자기를 수출 상품으로 만든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대항해 시대에 화이트 골드의 가치를 알았고, 조선 청화백자의 흐름을 이어받아 집중적으로 수출 상품으로 만들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유럽은 18세기 초에야 도자 제작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 꿈을 이룬 것은 1710년경 독일 마이센 도자기였다. 독일의 연금술사 뵈퇴거가 고령토의 성분을 분석해 냄으로써 마침내 최초로 자기 생산에 성공했다. 이어 영국 본차이나는 세계 도자 산업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 냈다. 웨지우드에 의해 도자기 제조 방식에 기계화를 도입하고 대량생산을 이루어냈다. 유럽 자기는 급격하게 성장하여 불과 300년 만에 종주국 중국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백색 황금'이라 불리는 리튬은 소금호수나 광산에서 채굴된다. 이 리튬은 소성로에서 다른 연료와 섞이고 구워져 양극재로 탄생된다. 고밀도 에너지를 가지는 양극재 소재 기술과 제조 공정을 위해서는 오랜 기술의 축적이 필요하다. 하이니켈 양극재 배터리는 이제 세계를 호령하는 무기가 됐다.

21세기 '화이트 골드'인 배터리 밸리는 한국의 '포항'이다. 포항은 세계 최초로 에너지 밀도가 높은 하이니켈 양극재 생태계를 구축하였다. 전구체 생산에서 수산화리튬 가공, 양극재 생산과 재활용까지 순환 시스템을 구축한 곳이기도 하다. 그 결과 포항은 어느 곳에서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충전 시간이 빠르며 수명이 긴 배터리 소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 전지 상용화에 성공한 나라는 일본이다. 배터리를 대규모로 생산하기 시작한 첫 번째 나라였다. 하지만 에너지 밀도가 높은 삼원계 양극재 생태계를 구축하고 대량생산과 수출 국가로 성공한 나라는 한국이다. 미국의 테슬라와 스웨덴의 노스볼트와 같은 기업들도 배터리 제조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신에너지 경제 시대에 전지(電池)는 국력이다. 배터리는 단순한 산업을 넘어 경제를 지키고 견인하는 경제 안보 산업이 되었다. 앞으로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과 전기 모빌리티로의 전환에 엄청난 기회가 열릴 것이다. 배터리 황금기를 연 우리나라가 배터리 최강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도자기 전쟁에서 배터리 전쟁의 답을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