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호 사회부 사회팀장
이재명 대통령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이 고등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거점국립대 5곳을 선정해 10년간 총 1조 원씩 지원하겠다는 업무계획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하면서다. 연구중심대학화와 지역 연구개발 자율체계 구축, 세계 100대 대학 진입 등 당찬 목표를 내걸었지만, 대학가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우선 이 정책의 취지는 분명하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선 지역 고등교육 역량의 상향 평준화와 입시 서열 완화, 지방정주 기반 조성이라는 복합적 과제를 동시에 풀려는 시도다. 고등교육 질서 자체를 재편하겠다는 선언이다.
정책의 기대 효과도 적지 않다. 고등교육의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 지역거점국립대가 각자의 특화 분야를 키우는 '지식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학생 유출을 막고 지역에서 일하고 정착하는 젊은 층이 늘어난다면, 인구소멸을 막는 데에도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예산이 없다'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서울대 수준의 연구 인프라와 인건비, 장비, 국제화 전략을 실현하려면 연간 3조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추산도 있다. 현재 과기부가 제시한 10년간 1조원은 거점국립대 10개 기준이 아니라 5개 대상이다. 대통령 공약과는 괴리가 존재한다. 게다가 고등교육재정특별회계가 올해 종료될 예정이어서, 오히려 전체 재정은 축소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하나의 우려는 '서울대 10개' 구상이 지역 균형을 내세우면서도, 실상은 지역 간 경쟁을 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 국립대에 지원이 집중된다면, 다른 대학, 특히 지역 사립대학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대학 간 갈등이 심화하고, 결국 고등교육 생태계 전반이 흔들릴 수 있는 우려도 존재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의 대학 위기가 단순히 재정 부족 때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식생산과 전달의 패러다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대학의 전통적 지식 활동과 의미를 흔들고 있다. 대학이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본질적 기능인 사고의 깊이와 윤리적 통찰, 창의적 문제 해결력 등을 되찾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외형만 키운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진정한 교육개혁이 되려면, 국립대뿐만 아니라 지역 사립대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고등교육 정책으로 확장돼야 한다. 지금처럼 국립대에만 과감한 투자가 몰리고, 사립대는 사업 공모를 위한 불확실한 경쟁에 내몰리는 구조로는 대학 생태계의 균형을 이룰 수 없다. 정부는 재정 지원의 방향을 단기 성과 중심의 '사업'이 아니라, 대학의 기초체력을 높이는 반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고등교육 재정지원 체계도 재조정해야 한다. 일반지원사업 중심의 경쟁체제를 줄이고, 국공립·사립을 아우르는 균형 잡힌 기초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등록금에 의존하는 사립대에 대해선 지원을 확대하되, 동시에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의 자율적 혁신이 정부 지원의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
이제 우리는 단순한 대학 간 서열 싸움이 아니라, 한국 고등교육 시스템 전체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그 출발점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하려면, 서울과 지역, 국공립과 사립, 경쟁과 연대의 균형 위에서 정교하게 설계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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