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의학은 예술이자 과학이다(Dentistry is an art and a science)' 이 말은 내가 치과대학에 다닐 때 가장 많이 들은 말 중에 하나이다. 치과대학에 입학해서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 말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치의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약리학, 재료학 등에 관한 과학적 기초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치의학이 과학이라는 사실은 쉽게 수긍이 갔지만, 치의학이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치과의사에게 미적 감각이 필요하다는 정도로 이해하였던 것 같다.
더군다나 과학은 대부분 논리적 및 분석적 사고에 기초하고, 예술은 주로 상상적 및 종합적 사고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서로 매우 다른 영역에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치의학이 이렇게 두 가지 상이한 개념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말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그런데 치과임상에서 경험이 쌓일수록 '치의학은 예술이다'라는 말의 의미가 실감 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치과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진단과 치료법의 선택과 같은 의학적 의사결정(medical decision making)을 내리는 총론적인 기본 원칙은 과학적 연구 방법에 의해서 확립된 지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개별 환자에게 내려지는 구체적 판단과 결정은 그 환자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심리적, 사회경제적 특성과 치과의사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현실적 의료환경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를테면, 치료의 목표를 정함에 있어 환자의 요구를 어디까지 반영하고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치아가 빠진 부위를 가공의치로 회복할 것인가 아니면 임플란트로 회복할 것인가? 그리고 인공치아를 제작하기 위해서 어떤 재료를 선택할 것이며, 그것의 모양과 색깔은 어떻게 정할 것인가? 흔들리는 치아를 발치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최대한 유지시키는 것이 좋을까? 치아교정치료를 해야 하는 부정교합의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등등…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한 의학적 의사결정은 그 환자가 처해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한 치과의사의 종합적 판단과 치과의사의 창의적 통찰력에 의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별 환자와 개별 의사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의 의사결정이 내려질 수가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의학적 의사결정은 같은 조건에서는 항상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 과학이라기보다는, 같은 조건일지라도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예술의 영역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겉보기에는 비슷한 케이스의 환자라고 할지라도 치료의 내용과 방법은 다를 수 있으며, 모든 환자의 치료 계획은 전적으로 그 환자에게 개별화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맞춤형 치료계획의 수립을 통해서 환자의 형편에 맞는 최선의 치료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치료 계획 수립은 전체 진료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비용 효율성에 기반을 두고 규격화된 진료를 요구하는 현재의 국민건강보험제도 하에서 이러한 맞춤형 치료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버드대학교의 심장의학자이자 평화활동가로서 노벨상을 수상한 바가 있는 버나드 라운(Bernard Lown)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치유를 할 때는 과학이 간과되어서도 안 되지만 너무 과학에만 치우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즉, 치유를 위해서는 예술과 과학이 동시에 필요하며 신체와 정신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하면서 인간을 소외시키고 환자와의 관계보다 의료 기술에만 의존하는 현대의학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가 있다. 오늘날 빈발하고 있는 의료분쟁도 따지고 보면 의료 이용의 규격화와 제도적 통제로 인한 인간 소외의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환자를 진료할 때 인간 소외를 어떻게 극복하고 과학과 예술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AI 시대를 사는 의료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재갑 경북대학교치과병원 구강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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