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대선 패배 이후 국민의힘이 몰락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갤럽 6월 둘째 주 조사(10~12일)에 따르면, 민주당은 46%, 국민의힘은 21%로 양대 정당의 지지도 격차는 25%포인트로 5년 내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이런 참담한 결과는 대선 패배 이후 국민의힘이 처절한 반성과 성찰 속에서 속도감 있게 쇄신을 단행하지 못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내란 특검 결과에 따라 국민의힘이 '위헌 정당으로 해산될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실성이 커 보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국민의힘은 대위기다.
16일 선출된 국민의힘 새 원내대표는 당과 보수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당장 새 원내대표는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대선후보 교체 시도 당무 감사 등의 개혁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김용태 비대위원장의 거취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윤석열 전 대통령과 얼마나 철저하게 절연할지 등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향후 국민의힘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는 19세기 영국 보수당의 거물 정치인이다. 그는 사회 통합과 모든 계층의 복지를 강조하는 '일국 보수주의'(One-Nation Conservatism)를 주창했다. 전통적 보수주의의 기반 위에 사회적 책임과 국가적 통합이라는 가치를 더하여, 계층 간의 갈등을 완화하고 안정적인 사회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담았다.
일국 보수주의는 19세기 영국 사회의 격변 속에서 보수당이 생존하고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념이다. 이는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보수주의가 유연하게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단순히 기득권층만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노동자 계층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보수당이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급진적인 변화를 지양하면서도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개혁을 수용하는 유연성을 보여주어 많은 국민에게 '합리적인 보수'라는 인상을 주었다.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은 2005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영국 보수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후 2010년 5월 총선거에서 보수당을 승리로 이끌면서, 약 13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그는 보수 변혁의 일환으로 '빅 아이디어'(Big Idea)라는 정책 철학을 제시했다.
그 핵심 내용은 기존의 국가 중심적인 사회 문제 해결 방식에서 벗어나, 권력의 분산 및 이전을 강조한다. 중앙 정부가 가지고 있던 권한과 책임을 지방 정부, 지역 공동체, 자선 단체, 사회적 기업 등 시민 사회 영역으로 이전하여, 각 지역의 필요에 맞는 해결책을 스스로 모색하고 실행하도록 장려한다.
이 밖에 캐머런은 대표로 취임하자마자 '책임 있는 기업'(Responsible Business)을 강조했다. 보수라고 무조건 기업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캐머런은 스스로 "현대적 따뜻한 보수주의"라고 말하고, 자신이 대처의 열렬한 팬이기는 하지만, 영국 보수의 상징인 대처리즘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영국 보수당 재건에 앞장섰던 디즈레일리와 캐머런이 위기에 처한 국민의힘과 한국 보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건하기 위해선 '제3의 길'을 가라는 것이다. 그 핵심은 시대적 변화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보수'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단순히 자유와 시장, 성장과 동맹 등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것을 넘어 '약자와의 동행', '격차 해소' '디지털 전환' 등의 미래 가치를 포용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보수 정당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고 외연을 확장하며 재탄생하는 데 매우 긍정적인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들이 실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보수 정당의 부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통찰력이 있는 지도자의 부상, 진정성 있는 실천, 계파 종식, 그리고 중도 외연 확장 등의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영국의 보수당이 '일국 보수주의'와 '빅 아이디어'를 통해 성공적으로 부활한 것처럼, 국힘과 한국 보수도 제3의 길에 기반한 새로운 이념과 아이디어를 통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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