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이영광] 구미의 '모처럼'

입력 2025-06-16 17:06:10 수정 2025-06-16 19:01:43

경북부 기자

이영광 경북부 기자
이영광 경북부 기자

'오래간만'이라는 의미를 지닌 '모처럼'. 지난달 열린 '2025 구미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현장을 취재하며 만난 시민들이 공통으로 꺼낸 말이었다. 대회가 흥행 조짐을 보이자 주 경기장과 선수촌 인근 야시장, 지역 상권 관계자, 시민 등은 '모처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만족감에 대한 신호는 지역 상권에서 먼저 나왔다. 대회가 열린 닷새 동안, 오랫동안 침체돼 있던 구미에서는 모처럼 지역 경제가 생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특히 주 경기장 일대와 선수촌 인근에서 열린 야시장, 인접 상권은 43개국, 1천200여 명의 선수단 등으로 북적였고, 상인들은 오랜만에 활력을 느꼈다. 단순히 인파가 몰린 것을 넘어, 지역 경제에 실질적인 온기가 돌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컸다.

실제로 대회 기간 중 함께 진행된 아시안푸드페스타에는 4만여 명이 방문해 1억8천여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낭만야시장은 9천700만원의 수익을 내며 지역 경제에 실질적인 보탬이 됐다.

또한 공공 배달 앱 먹깨비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대회 맞춤 이벤트 전략이 통하면서 5월 한 달간 주문 건수가 전년 동월 대비 4배 증가했고, 총매출은 11억6천만원을 기록했다.

구미시 공무원들도 긍정적인 의미를 담아 '모처럼'을 사용했다. 구미시가 처음으로 치러 본 국제육상대회를 통해 공무원들이 행정 업무에서 자신감을 얻는 기회가 됐다는 것.

본격적으로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제한된 예산, 부족한 인원, 기초지자체 역량 부족 등으로 국제대회를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구심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하지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잘 해내며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 이 과정이 조직 전체에 신선한 자극과 값진 경험, 실질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는 게 구미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되는 육상도 모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대한민국 육상 선수들은 오랜만에 국내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관중의 뜨거운 응원을 받으며 힘을 낼 수 있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대회 중반 쏟아진 폭우로 인해 일부 경기가 순연됐고, 마지막 날에는 이란 선수의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면서 축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일부 스타급 선수들의 갑작스러운 불참, 대선 정국과 맞물린 시기적 요인 등으로 대회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대회는 '모처럼'이라는 분위기가 지역 전반에 조성되면서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지역 경제와 도시 이미지를 되살리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산업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구미는 이번 대회를 통해 문화와 스포츠를 품을 수 있는 도시로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자원봉사, 민·관 협력이 어우러지며 '구미형 국제행사'의 성공 모델이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개회식에서 '203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구미 유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숙박 시설, 경기장 증축 등 현실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경험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도전하겠다는 입장이다.

구미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는 시민들이 오래 기다려 온 모처럼의 순간이었다. 김 시장이 쏘아 올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의 포부가 또 하나의 희망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도약을 여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