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아기바구니에 담겨 캠프헨리에 맡겨져…위탁 가정 거쳐 11살에 미국행
2005년 장교로 다시 한국 찾아…"정치가로 인생 2막 준비할 예정"
편견 심하던 시기 교육 못 받고 불우했어도 바르게 성장
아버지에 '아이 거두라' 꾸짖은 중대장 영향, 미식축구 유망주서 진로변경
"고향 대구에서 군생활 마무리 뜻깊어, 평생 봉사하며 나눌 것"

도저히 치유되기 어려울 것 같은 상처도 아물곤 한다. 때론 그 아픔이 새 삶의 원동력이자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놀라운 이야기가 돼 전해지기도 한다. 24일 대구에서 한·미 양국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전역한 주한미군 정보장교 이준(Yi Jun) 중령 이야기다.
◆캠프 헨리에 버려진 아이
이날 오전 캠프 워커에서는 조금은 특별한 전역식이 열렸다. 이 부대 정보장교 이 중령의 전역식에는 부인과 아들, 누나 등 가족과 동료들은 물론 이 중령이 영어교육 봉사활동을 이어온 수성대학교 간호학과 학생, 김선순 수성대 총장, 김인남 대구재향군인회 회장 등 수많은 한국인들이 찾아 전역을 축하한 것이다. 영관급 장교의 전역식으로는 이례적인 풍경이었다.
미 19지원사령관 프레드릭 크리스트 준장은 "이 중령의 커리어와 인생에 우연은 없었기에 오늘 전역식은 더욱 특별하다"며 "그를 개인적으로 알고 나면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군생활 이야기를 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그에게는 당연하지 않았고, 우리는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려준다"며 축사했다.
이 중령이 이날 다시 청중들과 나눈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사는 정확히 50년 전인 1973년 7월 24일 대구 캠프 헨리 정문 앞에서 시작한다.
당시 스물두살이던 이 중령의 어머니는 이 중령과 두살 터울 누이가 담긴 아기바구니를 영문을 지키는 헌병에게 맡기고 사라졌다. 남겨진 정보는 당시 부대에서 근무 중이던 생부 '레이먼드 워맥'의 이름뿐이었다.
이 중령의 어머니 역시 한국 전쟁 때 파병 온 미군 병사와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색인종 다문화가정에 대한 멸시가 심했던 시절, 편모가정에서 힘들게 살았던 이 중령의 어머니는 미군과 결혼해 미국에 가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를 만나 이 중령 남매를 낳았다. 아버지는 베트남 파병 후 연락이 끊겼는데 대구에서 복무 중인 것을 확인한 어머니가 애들을 맡긴 것이다.
자식들이 미국에서 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이별이었지만, 갑작스레 아이들을 넘겨받고 당황한 아버지는 남매를 고아원에 보냈다.
이 중령을 구한 은인은 당시 아버지의 중대장이었다. "책임지지 않으면 불명예 전역시키겠다"는 불호령을 내린 것이다. 중대장은 선임부사관과 함께 직접 이 중령 남매를 고아원에서 데려오기까지 했다.
이 중령은 "당시 중대장님이 일개 병사였던 아버지의 개인사에 관여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그분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깊은 감사를 표했다.
군인 신분으로 가정을 꾸리기 어려웠던 아버지는 이 중령을 위탁 가정에 맡기고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다만 위탁 가정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아 이 중령은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피부색에 대한 편견,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미군 물품이 거래되는 암시장에서 심부름 하고 수고비를 받으면서 살았다.
이 중령은 아버지가 전역하던 1984년 2월 25일 열한살의 나이로 미국에 갔다.

◆풋볼스타의 입대, "내 이름은 이준"
어렵게 입국한 미국 생활 역시 쉽지 않았다. 한국말도 서툴었지만 영어는 더 못했다. 어느 집단에도 속하기 어려운 정체성 문제도 그를 괴롭혔다.
이 중령은 엇나가는 대신 이를 꽉 깨물고 공부했다. 이 중령은 "뭐든 잘 할 수 있다고 믿고 핑계를 대지 않으려는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투지가 내게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또래들보다 4년 늦게 유치원 과정부터 시작했지만 중학생 시절 헌신적인 교사를 만나 학업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고교 시절에는 풋볼에 재능을 보이며 워싱턴주립대에 진학했다. 대학 2학년이던 1993년에는 유명 대회(Alamo Bowl)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등 맹활약했다.
프로 풋볼 선수로서의 삶이 보이던 찰나, 그의 삶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어머니와의 재회였다.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어머니를 찾아주려 서울의 흥신소까지 동원한 결과 한국에 있을 줄 알았던 어머니가 워싱턴주 타코마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가족들의 집과 불과 40 블록 떨어진 거리였다. 다시 만난 이들은 왈칵 눈물을 쏟았고 이후 매일 연락을 주고 받으며 다정하게 지낸다.
어머니와의 재회를 계기로 이 중령은 진로를 다시 잡았다. 아버지를 호되게 꾸짖은 중대장이 아니었더라면 현재와 같은 삶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같은 군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학군단(ROTC)에 지원했다.
입대 당시 사용한 이름은 아버지 이름을 따 써온 '레이먼드 워맥 주니어'가 아닌 한국명 '이준'이었다. 세살 무렵 모종의 이유로 동대구역 앞에서 미아가 돼 발견됐을 때 누군가 지어준 이름이었지만 그 이름에 스스로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다시 찾은 한국, 내 고향 대구
이 중령은 1998년 소위로 임관해 기갑장교로 3년, 이후로는 정보장교로 복무해왔다. 미 국방정보국(DIA)을 비롯해 각지에서 주요 보직을 맡으며 활약해 온 이 중령이 한국 땅을 다시 밟은 건 2005년 2월 25일, 미국으로 돌아간 지 정확히 21년만이었다.
사실 한국 파병은 피하고 싶었다. 이 중령은 "당시 아예 전역할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유년시절 차별받았던 기억, 또 여기서 비롯된 한국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전역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이 중령은 한국 땅을 밟았다.
막상 한국에 들어오자 서운했던 감정은 눈녹듯 사라지고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 이 중령은 "한국 풍경을 다시 보니 눈물이 마구 흘렀다. 그 동안의 아픔을 털어내고 한국에서 잘 지내보자는 다짐을 했다"고 회상했다.
이 중령은 한국에 가급적 오래 머물고자 노력했고 2010년까지 용산과 왜관 등에서 복무하며 한국에 완전히 정을 붙였다. 이 시기 같은 교회에 다니던 한국인 간호사를 만나 결혼도 했다.
이 중령은 2021년 6월 자신이 버려졌던 바로 그 부대의 정보참모로 발령받아 군생활 마지막 2년을 운명처럼 고향 대구에서 보낼 수 있었다.
가장 큰 아픔을 겪었던 도시지만 이곳에서 자라나는 8살 아들을 보면 치유 받는 기분이다. 이 중령은 "사람들이 어디서나 아이를 귀엽다고 하고 좋아해준다. 아들은 한국인 친구들도 많다. 내가 받았던 차별은 더 이상 없다"고 했다.
궁핍했고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했던 유년시절의 아픔은 이제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로 한 봉사활동으로 승화시킨다.
이 중령은 대구에 온 뒤로 매일같이 영어교육 봉사활동을 한다. 월요일에는 5~10세 아이들을, 수요일에는 보육시설 아이들을, 금요일에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 수업을 무료로 진행한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수성대 간호학과 학생들을 위해 환자들과의 소통에 필요한 영어회화 수업을 진행한다.
이 중령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학생들의 열정을 보면 나도 힘이 나 더 열심히 수업을 준비한다. 학생들에게서 내 자신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중령은 이달말부터 평택에 있는 미군 관련 컨설팅 회사에서 당분간 근무하며 정치가로서의 인생 2막을 준비할 예정이다. 몇년 후에는 워싱턴주로 돌아가 정치 경력을 쌓고 장기적으로는 주한 미국대사가 되는 게 꿈이다.
이 중령은 "언제나 한국과 미국 양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었다. 한국과 미국은 가장 가깝고 오래된 동맹이다. 그 관계를 더 가깝게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도 대구와 한국사회를 위한 봉사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제가 버려졌을 때 사람들이 옳은 선택을 해줬기에 제가 이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대구는 내게 이름을 비롯해 모든 정체성을 줬습니다. 난 이 도시에 평생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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