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속으로] 이지현 작가 ‘Dreaming Book&Photo’

입력 2023-07-21 13:00:50 수정 2023-07-23 18:55:15

책인데 책이 아니다…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해체’ 작품들
청도 갤러리 이서 개관전 8월 13일까지
책과 사진 조각내 다시 붙인 작업 선보여

이지현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이지현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이지현 작가의 작품. 갤러리이서 제공
이지현 작가의 작품. 갤러리이서 제공

"과거로부터 변하지 않은 뭔가와 그것에 대한 변화를 계속 고민해왔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의 것들.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속박으로부터 진정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에 관심이 많았죠."

이지현 작가는 변하지 않는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진다. 가령 미디어 홍수 시대에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 인화된 사진과 같은 것. 그는 그런 것들에 지루함과 불편함을 느끼며, 일상성의 익숙함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옷을 갈아입히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 작업의 핵심은 바로 '해체'다. 책의 모든 페이지를 분해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조각도 등 날카로운 도구로 한땀 한땀 해체한다. 흩어진 텍스트는 다시 이어 붙이고, 보존재를 앞뒤로 10여차례 칠한 뒤 오븐기에서 80도에 50분~1시간 가량 구워내는 작업을 반복한다. 바삭해진 책장을 다시 모아 책의 형태로 만들면 책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새로운 시각적 오브제가 탄생한다.

그는 "해체는 세상의 편안함과 익숙함으로부터 비켜나게 해서 그 대상이 낯설게 느껴지게끔 만들고, 그 이면에 감춰져 있던 어떤 것을 끄집어내는 내 작업의 핵심"이라며 "전통적인 굴레와 속박, 형식을 걷어내면 또 다른 아름다움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그의 개인사나 역사 의식, 세대의 얘기를 담은 책들을 선택한다. 교과서로 시작된 작업 소재는 작가 자신이 함께 살아온 1960, 70년대 서적과 성경, 악보, 오래된 잡지, 사전, 최근에는 반 고흐의 도록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책의 지질과 물성에 따라 작업의 강약도 섬세하게 조절해야 한다. "얇으면 정성을 들이고, 두꺼우면 힘을 줘야 되고, 그래도 안되면 쉬었다 해야 해요."

개관전으로 이지현 작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이서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개관전으로 이지현 작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이서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해체된 책뿐만 아니라 해체된 사진 인화지들도 전시장 벽면을 채우고 있다. 제주 곶자왈과 바다, 섬 등 그가 직접 찍은 일상의 풍경들이다. 사진인지 회화인지 헷갈릴 정도로 본래의 성질을 잃은 이미지들은 낯설고 색다른 느낌을 준다.

고충환 미술평론가는 조각조각 뜯어내 다시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그의 작업에 대해 "작가의 작업은 말하자면 원본의 원형을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원본의 이미지를 모호하게 하는 것이며, 이는 그 내부로부터(아마도 진즉에 내장돼있었을) 어떤 아우라 같은 것을 표출시키려는 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관객들이 두 가지 관점에서 전시를 봐줬으면 한다.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들어 '이게 뭐지'라고 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하는 의도가 첫번째이고, 일상적 물건인 책이 시각적 오브제로 변환돼 그 속에서 새로운 미적인 대상으로 감상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지현 작가는 1995년 제3회 매일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1998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2007년 인사미술대상을 받았다. 2018년 대구문화예술회관 올해의 중견작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개인전 'Dreaming Book&Photo'는 청도 갤러리 이서(청도군 이서면 대곡길 43)의 개관 기념전으로, 8월 13일까지 이어진다. 054-373-5657.